[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전기차 화재로 배터리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산 배터리에 대한 기회와 우려가 공존합니다. 저가 배터리에 대한 불신감은 국산 배터리 선호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 정부는 배터리 정보 공개 의무화도 추진 중입니다. 이로써 스마트폰이나 PC처럼 전기차도 배터리 스펙 사양이 세분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국산 배터리도 보급형에 유리한 중국산과 차별화가 가능해집니다.
하지만 이번 화재는 한국 주력인 삼원계(NCM) 배터리에 대한 불안감도 자아냅니다. 중국 주력인 리튬인산철(LFP)이 화학적 구조상 화재 불안이 덜하기 때문입니다. LFP는 가격도 저렴해 전기차 캐즘과 더불어 가격 하향 추세 속에 시장 주류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나마 LG에너지솔루션이 LFP 첫 수주에 성공하며 추격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중국산 전기차 및 배터리 견제 보호무역을 활용하면 중국이 앞서간 LFP 경쟁에서도 국산의 기회가 엿보입니다.
화재 불안을 지울 전고체 배터리는 중국도 상용화 단계를 빠르게 밟고 있습니다. 국산 배터리 3사가 먼저 기술 선점해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할지 관건입니다.
화재에도 거침없는 LFP…한국도 추격
2일 업계에 따르면 전기차 화재는 이미 미국에서 테슬라 등의 사례가 빈번했지만 시장 점유율에 미치는 영향은 불투명합니다. 중국산이 대세화된 시장 구도에 어떤 변화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SNE리서치 조사 결과, 7월 전기차 배터리 출하량은 CATL이 26.1GWh로 1위를 지켰습니다. 전년비로도 34%나 증가했습니다. 2위도 BYD(12.3GWh, 29% 증가) 중국산입니다. 국산만 주춤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이 7.1GWh로 3위를 차지했지만 5위에 오른 SK온과 함께 성장이 멈췄습니다(0% 증가). 7위 삼성SDI는 9% 감소했습니다. 이런 흐름은 전기차 캐즘과 가격 하향 추세에서 중국산이 득세한 원인으로 풀이됩니다.
국내에선 배터리 화재 여론이 민감하지만 내수에 국한됩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선 화재보다 전기차 가격에 더 민감한 편”이라고 전했습니다. 인천 화재는 중국 후순위 업체의 배터리 문제로, 브랜드 이미지 측면에서 국산에 반사이익을 안깁니다. 최근 용인에서 화재가 발생한 테슬라 차량도 일본산 배터리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중국 주력인 LFP 배터리의 화재 안전성도 부각됩니다. 인천 화재 차량의 배터리는 NCM(니켈-코발트-망간)입니다. 용인 화재 차량 배터리도 NCM과 구조가 비슷한 NCA(니켈-코발트-알루미늄)입니다. 당초 테슬라는 중국 CATL과 국내 LG에너지솔루션, 일본 파나소닉 배터리를 혼용한다고만 밝혔습니다. 그러다 정부의 요구에 화재가 난 모델X에 파나소닉 배터리를 쓴다고 공개했습니다. 파나소닉은 NCA를 만듭니다. 배터리 니켈 함량이 높으면 화재 위험도 커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은 LFP의 화재 안전성을 적극 홍보해왔습니다. 자국 내 공공 운송 차량에선 NCM을 사용하지 못하는 명분으로 내세웁니다. 글로벌 완성차들도 LFP를 선호하는 추세입니다. 테슬라, GM, 포드, BMW, 토요타, 메스세데스벤츠뿐만 아니라 국내 현대차그룹(기아, 중국 판매용 EV5에)도 LFP 사용 확대 계획을 세웠습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기 설치량이 부족할 땐 장거리 운송이 유리한 NCM이 선호됐으나, 시장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LFP가 폭넓게 채택됐다"고 전했습니다.
국내 배터리 3사도 LFP 개발에 나서고 있습니다. 국산 LFP가 본격 상용화 되면 유럽과 미국에서 중국산을 대체할 수 있습니다. 최근 캐나다가 중국산 수입 전기차에 100% 관세율을 부과하는 등 중국산 견제가 이어지는 까닭입니다. 그 속에 LG에너지솔루션이 LFP 국내 첫 수주로 청신호를 밝혔습니다. 2025년 말부터 르노에 LFP를 공급합니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기존 LFP보다 안전성을 높이고 원가도 절감했다”며 “세계 최초 파우치형 LFP를 수주해 유럽에서 중국과 경쟁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은 LFP 소재 수급 면에서도 유리해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중국은 철 매장량이 풍부합니다. 또 인광석 매장량이 많은 모로코에도 일찌감치 투자해왔습니다. 모로코는 미국과 FTA 체결국이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원산지 규정도 충족합니다. 국산 LFP가 보호무역을 활용해 점유율을 높이려면 소재 수급 문제도 풀어야 합니다.
화재 없는 전고체로 게임체인지
삼성SDI와 일본 토요타가 적극 개발해온 전고체 배터리는 중국산 득세를 바꿀 또다른 기회입니다. 삼성SDI는 2027년 양산 계획을 잡고 국내 첫 파일럿 라인을 가동 중입니다. 토요타와 마찬가지로 황화물 전고체 개발에 힘쓰고 있습니다. 산업 내 기술 상용화 단계에서 점점 황화물이 우세해지는 양상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도 2026년으로 잡았던 고분자계 대신 2030년 황화물 전고체 양산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SK온도 미국 솔리드파워에 투자(3000만달러)해 황화물 전고체를 개발 중입니다. 상용화 시점은 2028년으로 잡고 있습니다. 현대차도 2028년 상용화 목표로 황화물 전고체 개발에 뛰어들었습니다. 미국 솔리드 에너지 시스템(1억달러)에 투자하면서 개발 경쟁에 합류했습니다.
유상민 KDB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은 “전고체 배터리는 화재 등 안전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음극에 흑연 대신 리튬을 사용해 에너지 밀도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면서도 “기술적 난이도가 존재해 전기차로의 상용화에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양산 공장 건설과 차량 설계변경 등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전고체 배터리도 중국이 선점할 우려가 존재합니다. 중국 니오가 지난 5월 반고체 배터리 시범 운영을 시작하는 등 반고체 선점으로 전고체 가능성도 넓혔습니다. 반고체는 세계 배터리 1위 CATL도 주력하는 분야입니다. 게다가 최근 중국 Sunwoda는 2026년 전고체 배터리 양산 계획을 내놨습니다. 중국 그레이트 파워도 같은 시기에 양산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이들은 높은 에너지 밀도에다 가격을 낮춘 기술을 확보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 주장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있지만, 중국이 전고체 배터리에 관심을 쏟고 있음을 방증합니다.
홍두선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중국 기업들이 반고체 배터리를 통해 전고체 배터리의 기술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배터리 기업도 중국 배터리 기업보다 늦게 반고체 개발에 착수했지만, 반고체 배터리의 개발 및 상용화 기간이 짧은 만큼 그 격차를 충분히 따라잡을 여지가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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