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고려아연 지분 전쟁과 진짜 밸류업
2024-10-07 06:00:00 2024-10-07 06:00:00
고려아연 지배권을 놓고 건곤일척의 쟁탈전이 한창입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베인캐피탈, 이에 맞선 영풍과 MBK 연합군은 고려아연과 영풍정밀 주식을 두고 지분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공개매수와 대항공개매수, 법정 소송을 불사하는 혈전을 치르는 중입니다. 덕분에 올해 내내 50만원 부근에서 움직이던 고려아연 주가는 70만원을 돌파하며 강세 행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개인 투자자들은 이런 특수한 시기에나 대접을 받는 것 같습니다. 평소엔 평생 가도 제 가치에 이르지 못할 것처럼 낮은 가격대에 무겁게 짓눌려 있다가, 내가 가진 주식을 비싸게 사주겠다고 나서는 누군가가 나타나야 새털처럼 가볍게 날아오르니까요. 
 
다른 주주들이 가진 주식을 비싼 값에 사겠다는 분들은 당장 거액을 동원하느라 허리가 휘겠지만, 회사의 지배권을 지키기 위해 혹은 뺏기 위해 맞선 양측은 기꺼이 이 정도 값은 치러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나 봅니다. 고려아연 주식 한 주의 가치가 얼마인지는 이 종목을 분석하는 애널리스트나 몸값을 평가하는 전문 자문업체가 아니고선 가늠하기 어렵겠지만, 경영권 전쟁 과정에서 나오는 숫자들을 보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치열한 공방은 도리어 해당 기업의 가치를 재평가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평상시 주가는 왜 그 모양일까요?
 
만약에 말입니다. 이번에는 고려아연을 두고 맞선 양측이 서로 가격을 높여가며 주식을 사겠다고 나섰으니 망정이지, MBK가 고려아연 대주주의 지분을 통째로 매수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경우였다면 어땠을까요? 대주주의 지분은 아마도 지금처럼 혹은 지금과 비슷한 수준으로 높게 평가해 인수를 했겠죠. 하지만 주가는 오르지 않았을 겁니다. 오직 그분들의 주식만 비싼 값에 사면 문제없이 지배권을 넘겨받았을 테니까요. 그 외 기관이나 개인 주주들은 자신의 주식을 그와 같은 가격에 사달라고 요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다수 상장기업들의 최대주주들은 주가가 높게 유지돼서 좋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주식을 넘길 필요가 있을 때는 자기 주식만 비싸게 사줄 상대를 찾으면 되니까요.
 
이게 한국 주식시장의 현실이고 민낯입니다. 
 
한국거래소가 밸류업지수를 발표했습니다. 지수를 구성하는 100종목의 면면을 확인한 후 비판기사가 쏟아졌습니다. 개인적으론 충분히 예상 가능했기에 실망할 것도 없었지만, 정부와 금융당국이 연초부터 수차례 ‘밸류업’을 앞세워 투자자들과 시장의 기대를 한껏 부풀렸기에 반작용도 컸습니다. 일부에선 ‘뽐뿌질’의 이유를 4월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에서 찾기도 하나 봅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짜 밸류업은 지수 하나 발표하는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 종목 몇 개 바꾼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번 밸류업지수 발표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을 찌르고 환부를 도려내는 것이 더 중요하단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을 뿐입니다. 
 
밸류업의 시작, 갈 길이 멉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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