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국정농단으로 국회에서 탄핵되고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당했다. 박근혜 청와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김영한 씨는 자신이 모시던 대통령이 어떤 최후를 맞았는지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남긴 이른바 ‘김영한 비망록’에는 박근혜 정권이 왜 무너졌는지 기록되어 있다.
2014년 6월부터 2015년 1월까지 청와대 회의 때마다 빠지지 않고 회의 내용을 기록해 놓은 ‘김영한 비망록’에는 박 정권이 언론을 어떻게 탄압하고 장악하려했는지 나와있다. ‘KBS 상황파악, 플랜 작성’ ‘방통위원장과 상의’ ‘KBS이사 성향 확인 요망’ 등 공영방송 KBS 사장 선출에 개입한 정황이 담겨있다. KBS가 문창극 총리후보자 친일발언을 보도하자 ‘방심위, 문창극 관련 지도’ ‘전사들이 싸우듯이, 방심위 KBS 심의’ 등 방심위를 통해 KBS를 압박하도록 주문했다. 극우단체를 통한 KBS 고발을 기획한 흔적도 있는데, 실제 극우단체가 KBS 보도본부장·앵커·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정권에 비판적이었던 언론보도를 향해 ‘그대로 두면 안됨’ ‘반드시 제소, 고소, 고발 및 손배청구로 철저히 대응’하라고 지시하고 대통령 비판보도를 한 매체에 대해 ‘끝까지 밝혀내야’ ‘본때를 보여야’ ‘발본색원’이라고 메모했다. 당시 ‘권력서열 1위 최순실’이라는 소문을 입증한 ‘정윤회 문건’ 보도와 관련해 ‘적에 대해여는 적개심을 가져야’라고 쓰고 세무조사 등 언론대응 방법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 세월호 참사, 비선실세 논란 등이 터져나오자 ‘시민단체 통해 고발 검토’라고 했고, 이 메모 직후 박사모, 새마을포럼 등 친여·극우단체들은 언론인·야당 정치인 고발에 나섰다.
박 대통령 탄핵 직전 은밀히 만들어진 ‘기무사 계엄문건’에는 계엄사가 대통령 탄핵세력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어떻게 언론을 통제할 것인지도 세세하게 정리해놓았다. 계엄사의 언론 사전검열부터 시작해 언론사 통폐합, 기자취재 통제, 기사 처벌은 물론 인터넷과 SNS 차단 계획까지 세웠다.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고 역사는 되풀이되는 중인가? 최근 몇몇 언론에 윤석열 대통령실이 극우단체를 시켜 비판언론을 고발하도록 사주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대통령실 행정관이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니네 고발하고 막 이런 거 있잖아, 그거 다 내가 한거야”라고 말했다. 그는 ‘새민연’이라는 극우단체를 사주해 윤 정권에 비판적 보도를 해온 MBC를 고발하도록 했다고 했는데, 이 극우단체는 MBC에 몰려가 규탄시위를 벌이고 그 다음날 MBC 사장 등을 고발조치했다.
이에 앞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도 극우단체에 ‘관제데모’를 사주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자기 가족·친인척·전 직장 지인을 동원해 비판언론 보도를 심의하라는 민원을 사주했다. 검찰이 민주당 정치인, 뉴스타파 같은 비판언론 기자를 고발하라고 국민의힘을 사주한 고발사주 사건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벌어진 일이다. 윤석열 검찰의 ‘고발사주’, 윤석열 대통령실의 ‘관제데모 사주’ ‘비판언론 고발사주’, 윤석열 방심위의 ‘민원사주’, 이 정권은 무슨 ‘사주정권’인가?
사주(使嗾)는 ‘남을 부추겨 나쁜 짓을 시킴’을 뜻한다. 정권이 언론을 향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고발을 사주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것은 불법이고 위헌적이다. 떳떳하지 못하니 몰래 뒤에서 나쁜 짓을 시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 때의 ‘김영한 비망록’같은 것이 이 정권에서도 공개된다면 실상이 다 밝혀질 것이다. 윤석열 정권이 친여·극우단체를 부추겨 비판언론을 고발사주토록 하고 방심위 민원사주를 통해 비판적 보도를 제재한 것 등을 보면 박근혜 정권 때와 다른 게 하나도 없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과 똑같은 역사의 비극이 반복될 수도 있다.
김성재 전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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