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중동지역 전쟁이 확전 양상을 보이며 자산시장의 불안감도 커졌습니다. 국제유가, 금 등 주요 지표의 가격이 아직은 안정권에 머물러 있지만 이스라엘이 레바논 공격을 넘어 이란까지 조준하고 있어 5차 중동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는 상황입니다. 자산시장의 변동성도 확대될 분위기입니다.
우리 금융시장이 개천절 휴일로 멈췄던 3일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는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원유선물(11월물) 가격이 5.14% 오른 배럴당 73.71달러를 기록했습니다. 1일 2.43% 오른 데 이어 한 번 더 급등한 것입니다.
이날의 상승은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이란 공습 가능성까지 제기된 데 따른 영향으로 해석됩니다.
미국, 이란 공격 내심 승인?
현재 이스라엘은 헤즈볼라 세력 소탕을 위해 레바논을 공습한 데 이어서 지상군을 투입한 상황입니다. 교전이 격해지며 사망자도 늘고 있습니다. 레바논에선 헤즈볼라 대원 외에 정규군도 사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레바논의 헤즈볼라, 예멘의 후티 등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 세력과 동시에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전쟁 초기엔 하마스 공격에 집중했다면 최근엔 레바논의 헤즈볼라로 화력을 집중하는 분위기입니다.
이때마다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규모 미사일 공격을 퍼부으며 견제하고 있지만, 사실상 대의명분을 위한 소극적 응전으로 여겨져 글로벌 자산시장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지상군을 투입하면서 전쟁 양상이 변했습니다. 이번 전쟁이 중동지역의 질서를 재편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태도 변화가 포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3일(현지시간) 다농 유엔 주재 이스라엘 대사는 “이스라엘이 다수의 보복 옵션 갖고 있으며 조만간 힘을 보여줄 것”이라고 발언했습니다. 이에 페제쉬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군사행동, 테러 등 레드라인을 넘는 행위에 대해 과감한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문제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같은 날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 석유 시설에 대한 공격을 논의하고 있다고 발언한 사실입니다. 테러 세력을 공격하는 것을 넘어 이란 본토를 직접 타격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공격을 허가한 것이 아니라 조언하고 있다”고 강조했으나 시장에서는 이란 공격 가능성이 임박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초기엔 이스라엘이 주변국들을 공격하며 전쟁을 키우는 것에 부담을 느꼈던 미국 정부가 내부적으로 매파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며 공식적으론 확전 반대, 사실상 공격 용인으로 돌아선 것으로 관측됩니다.
최근 8700만원을 돌파하며 회복세를 보이던 비트코인은 이란과 이스라엘의 중동 전쟁 우려에 급락하는 등 하락세를 기록했다. 사진은 지난 2일 서울 서초구 빗썸라운지 강남점에 비트코인 시세가 표시된 모습.(사진=뉴시스)
이란 원유생산량 4위…공격시 유가 자극
이스라엘과 하마스, 헤즈볼라 사이의 전쟁이 이란 공격으로 확대될 경우 5차 중동전쟁 발발 위험도 커지게 됩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이란 석유 시설을 공격하는 것을 넘어 자칫 핵시설까지 타격할 경우 중동지역의 앞날은 안갯속에 빠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주변국인 요르단과 이집트, 아랍에미레이트, 바레인과는 협정을 맺었고 미군이 이라크와 시리아에 주둔해 있어 오직 이스라엘과 이란의 문제로 볼 수 있으나, 중동지역의 민족, 종파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양상이 어떻게 전개될지 쉽게 예측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긴장감이 높아질수록 유가 상승을 자극하게 됩니다. 당장 전 세계 원유생산량 4~5위권의 이란이 원유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유가도 따라 오르게 됩니다. 원유 생산 중단이 아니라도 이란과 접한 호르무즈해협에 긴장감이 높아질 경우에도 변동성 확대가 예상됩니다. 이미 선물시장에서 유가 상승 베팅 증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3일 중동지역의 긴장 고조가 글로벌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유가·금 아직 안정권…상승 채비는 갖춰
그럼에도 가격만 보면 아직은 안정적입니다. WTI가 최근 일주일 사이 8% 넘게 올랐지만 1개월 상승률로 보면 5%대에 그칩니다. 연초 이후 상승률도 비슷합니다. 올랐다고 해도 지난 4월과 8월 80달러대에 머물러 있었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엔 100달러 영역도 경험했기에 절대가격으론 아직 금융시장을 위협할 수준은 아닙니다.
오히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지역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데도 유가가 안정적인 것이 불안감을 키웠습니다. 전쟁 위기로 인한 유가 상승 압력보다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 감소 우려가 큰 것으로 해석됐기 때문입니다.
다만 전쟁 양상에 따라 얼마든지 급등할 가능성은 남아 있습니다. 유럽의 소비가 증가하는 겨울이 다가오는 것도 변수입니다.
전쟁 위험은 금 시세에도 반영돼 있는데요. 뉴욕상품거래소(COMEX) 기준, 트로이온스당 2680달러 선까지 올라선 후 잠시 횡보하던 선물(12월물) 시세가 최근 2690달러 선을 향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비트코인 역시 2일 4%대 급락세를 보인 후 눈치보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에 변동성지수(VIX)의 진폭도 커지는 분위기입니다. 3일 VIX는 8.4% 급등했습니다. 예상보다 높은 미국 실업률과 엔케리트레이드 청산이 맞물리며 전 세계 금융시장이 폭락했던 지난 8월5일엔 23.39에서 장중 65.73까지 181%나 폭등했던 것처럼, VIX의 경우 위험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이에 8% 정도의 등락은 놀랄 일은 아니지만 지난 몇 달간 안정적이던 지수 변동폭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할 부분입니다.
전쟁 여파가 국내 자산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은 아직 제한적이지만 전쟁 양상 변화에 따라 충격파를 일으킬 가능성이 커 당분간 국제 정세를 주의 깊게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