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퇴임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70) 멕시코 전 대통령은 임기일 2192일 중 1438회 생중계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대선과 총선을 함께 치르는 개헌에 따라 6년 임기 중 2개월 일찍 퇴임한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은 휴일을 뺀 평일에는 거의 매일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세계 기록일 게 분명합니다. 길게는 3시간이 넘는 회견에서 "나는 다른 정보가 있다"며 정부에 대한 비판을 방어하는 한편으로 자신의 의제를 전파하면서 지지자를 결집하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펼쳤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코로나19에 걸린 며칠을 제외하고는 기자회견을 거른 날이 거의 없어 '마냐네라'(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라는 별명이 붙었다는데, 퇴임 마지막 날 기자회견에도 멕시코 대통령 공식 유튜브 채널에만 20만 명 넘게 접속했습니다.
"본인 유튜브 계정을 이용한 쇼", "투명하게 소통하는 척했지만, 불리한 질문은 회피하고 자신이 어필하고 싶은 내용을 주로 꺼낸 선전"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하지만 쇼라도 이 정도면 인정해 줘야 합니다. 그 끈기와 집념은 확실합니다. 질문자를 사전 배치했다는 의혹이 맞더라도 무수히 많은 말을 쏟아내면서 5년 10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멕시코 국민들을 속이기는 불가능할 겁니다. 임기 마지막 달 지지율이 68%를 기록한 것이 이를 방증합니다. 정권 재창출에도 큰 기반이 됐습니다. 로페스 오브라도르의 국가재생운동(MORENA·모레나) 창당 동지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이 후임 대통령에, 그것도 멕시코 헌정사 200년 만에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된 겁니다.
한국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기자협회에 따르면 150회 이상 기자회견을 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모두 20회에 미달하고 '기자회견'이라는 공식 기준을 충족시킨 횟수로 따지면 문 전 대통령 역시 6번에 불과합니다.
노무현, 김대중은 모든 역대 대통령 평가에서 각각 1∼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위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빼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만 놓고 보면 1∼2위입니다. 다른 전임들과는 그 격차도 큽니다. 기자회견을 비롯한 소통 노력도 높은 평가의 주요인입니다.
2022년 5월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은 어떨까요? 기자회견을 달랑 세 번했습니다. 민주주의 정착과 구현이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멕시코를 눈 아래로 봐 왔지만, 이제는 언감생심 아닐까요? 권력의 투명성은 민주주의 핵심 척도 중 하나입니다.
하나 빼먹을 뻔했습니다. <뉴스타파>와 '참여연대'가 대통령실에 5급 이상 직원 명단을 공개하라고 소송을 낸 적이 있는데요. 1심에 이어 지난 달 말 2심에서도 법원은 대통령실에 명단을 공개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현재 공개돼 있는 명단은 비서관급 이상 49명뿐입니다. 대통령실 근무자는 440명이 넘는데 국민들은 어떤 사람들이 최고 권부인 대통령실에 근무하는지도 알 수 없는 겁니다.
황방열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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