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가 휘청이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시선이 매우 따갑습니다. 클린스만 전 감독 선임 때부터 시작된 잡음은 선수간 갈등으로 인한 부상,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상 문제로 이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입니다. 논란을 다루던 청문회장에서는 축구협회를 두고 '동네 계모임이냐'라는 비판까지 나왔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축구협회에 대한 감사를 두 차례 진행했는데요. 감사 결과는 많은 이들이 예상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쇄신'보단 '침묵'으로 일관하며, 어떤 변화도 없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대중들은 반성 없는 협회에 분노하며 스포츠 정신 실종을 질타하고 있습니다. 토마토 Pick이 거듭된 '거짓' 해명으로 위기에 몰린 축구협회 문제를 짚어봤습니다.
논란의 시작, 클린스만
최근 한국 축구를 둘러싼 논란의 시발점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클린스만 감독은 국내외 축구 팬들 사이에서 이미 실패한 지도자란 평가를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축구협회는 클린스만 감독에게 축구 대표팀 지휘봉을 맡겼는데요. 당시에 축구협회는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이끈 파울루 벤투 전 감독과 재계약을 검토했지만, 최종 선택은 클린스만이었습니다. 당시 감독 선임 프로세스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축구협회는 선임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지 못해 논란을 키웠습니다.
-실력도 없고 불성실한 태도로 일관 : 논란 끝에 부임한 클린스만 감독은 두 차례 열린 평가전에서 승리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또 축구팬들의 우려대로 짧은 한국 체류 기간과 잦은 외국 출장 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줬는데요. 비판이 끊이지 않자 그는 "노트북을 갖고 있다면 어디든 내 사무실"이라며 "대표팀 감독은 해외에 자주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업무 스타일을 바꾸지 않겠다고 공언해 논란을 더 키운 것이죠. 그렇다고 전술이 뛰어나다고 보기도 어려웠습니다. 주요 경기마다 해외파 핵심 멤버들에 의존했고, 선수들은 혹사당했는데요. 결국 아시안컵에서 졸전을 펼치며 감독으로서 실력마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그럼에도 클린스만은 과거 자신의 약속과 달리 사퇴를 거부했고, 해외에 체류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하루 만에 다시 자택이 있는 미국으로 돌아가 논란에 기름을 더 부었습니다. 결국 64년 만에 우승을 노렸던 아시안컵 4강에서 탈락했고, 클린스만은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됐습니다.
규정 위반과 거짓 해명
문체부의 감사 결과로 밝혀진 감독 선임 과정은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에다 규정 위반의 연속이었습니다. 문체부는 축구협회가 홍명보 감독은 물론 클린스만 감독을 뽑을 때도 규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해 1월 마이클 뮐러 전 전력강화위원장(전강위)과 축구협회는 전강위가 구성되기 전에 이미 감독 후보자 명단을 작성됐고, 에이전트를 통해 후보들과 접촉했습니다. 이후 뮐러 위원장 단독으로 후보자를 5명으로 압축해 1차 면접을 홀로 진행했습니다. 최종 후보 2명에 대한 2차 면접은 정몽규 회장이 진행했다고 합니다.
-"회장은 감독 추천 권한 없어" : 하지만 축구 국가대표팀 운영 규정에 따르면 대표팀 감독은 전강위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하도록 돼 있습니다. 전강위가 감독 후보자들에 대해 면접 및 평가 등을 진행하고 감독 후보자를 추천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전강위원들이 배제된 것입니다. 이런 절차가 논란이 되자 협회는 "뮐러 위원장이 복수 후보자를 대상으로 1, 2차 화상 면접을 진행했고, 정 회장은 면접이 아니라 의견 청취를 위한 면담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반면 문체부는 감사 결과를 통해 "축구협회장은 감독 추천 권한이 없다"며 정 회장의 2차 면접이 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협회가 감독 선임 당시의 최종 면접 자료도 남기지 않는 등 불투명하고 석연치 않은 행정으로 일관했다는 게 문체부의 지적입니다. 이런 난맥상은 이후 홍명보 감독 선임 절차에서도 되풀이됐습니다. 규정상 감독 추천 권한이 없는 이임생 당시 기술총괄이사가 감독 후보자 3명의 면접을 진행하고 최종 후보를 추천한 사실이 알려졌죠.
FIFA의 경고…축구 못 볼까
감독 선임 문제가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결국 국제축구연맹(FIFA)이 대한축구협회에 경고성 공문을 보내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피파는 지난달 30일 공문에서 "축구협회의 감독 선임과 관련한 문체부 감사를 비롯해 국회 현안질의 등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며 "축구협회는 제3자의 지나친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우려했습니다. 축구계 안팎에서는 최악의 경우 한국이 월드컵에 나갈 수 없다는 우려까지 나왔습니다.
-문체부 "협회 독립성 존중" : 실제 피파가 경고한 의무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국제대회에서 불이익을 겪게 될 수도 있는데요. 지난 2016년 쿠웨이트 정부가 체육단체에 행정 개입이 가능하도록 법을 개정하자, 피파가 쿠웨이트축구협회의 자격을 정지해 국제대회 출전권을 회수한 적이 있습니다. 문체부도 이를 의식한 듯 지난 2차 감사 결과에서 두 차례 감독 선임 절차에 하자가 있었지만, 감독 계약 무효 판단은 어렵다는 결론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면서 최현준 문체부 감사관은 "축구협회의 독립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감사 결과는) 절차적 하자가 있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해 자율적으로, 절차적 흠을 바로잡으라는 의미"라고 강조했습니다. 문체부로서도 최악의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떠나야 할 때"
피파의 경고와 문체부의 진화에도 국민적 공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감사 결과, 규정에 따른 절차가 무시되고 축구협회장의 무소불위 권력에 대한 지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 문체위 소속 강유정 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에 JTBC '단도직입'에 출연해 "(정 회장이) 스스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현안질의 과정에서 수긍하셨다"며 "사회적 물의를 빚은 임원인 경우 일종의 징계 절차를 받을 수 있고 징계를 받은 경우에는 아예 입후보 자체가 어렵게 될 것"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4연임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선언해야 될 때가 먼저 와야 되지 않을까"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이진하 기자 jh3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