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혈당과 도파민
2024-10-10 06:00:00 2024-10-10 06:00:00
‘고자극’, ‘도파민 풀충전’, ‘아드레날린 대폭발’. 자기 전 유튜브를 뒤적거리다 눈길을 사로잡는 단어들을 반사적으로 클릭하여 시청한다. 모두 특정 컨텐츠의 결정적 순간을 짧게 압축한 영상들이다. 1시간 분량을 10분으로 요약하여 다시 2배속으로 빨리감기 한 것들. 확실히 자극적이라 눈을 떼기 어렵고 보고 있노라면 침이 꼴깍 넘어간다. 하지만 짧은 쾌감 뒤에는 곧 공허함이 찾아온다. 잠은 어느새 달아났고 정신은 말똥한 와중에 또다시 SNS와 유튜브를 뒤적이며 생각한다. 뭐 좀 재미있는 것 없나.
 
도파민.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인 도파민이 언젠가부터 ‘재미’의 대명사가 된 듯하다. 영화, 드라마, 예능, 유튜브, 온갖 컨텐츠의 홍보 문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아이러니한 건 도파민 세 글자가 어느 때보다 자주 눈에 띄는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도파민 부족을 체감하는 순간은 오히려 많아졌다는 사실. 넘쳐나는 컨텐츠는 끝까지 보는 경우가 드물며, 보고 나서 재미나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도 손에 꼽는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깨달았다. 도파민이라는 단어에 비례하여 무료함을 느끼는 순간도 늘어났다는 사실을.
 
도파민 못지않게 최근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다름아닌 ‘혈당’이다. 핏속 포도당을 의미하는 혈당은 우리 몸의 건강 상태를 알려주는 중요한 지표다. 혈당이 상승하면 이를 낮추기 위해 인슐린이 분비되는데, 이것이 반복되면 몸의 인슐린 저항성이 높아지면서 비만 등 성인병의 위험이 증가한다고 한다. 자칫 당뇨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이유로 최신 건강 트렌드에서는 혈당을 낮추는데 온통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기업들은 당을 제거했다는 온갖 식료품을 출시하는 중이며, 당뇨인이 아님에도 혈당을 주기적으로 체크하는 인구도 크게 늘었다.
 
다만 이처럼 당을 꺼리는 분위기와 다르게 도파민에 대해서는 다들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보다 강한 자극을 찾아 헤맨다. 생각해 보면 당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도파민이 정신에 끼치는 영향이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단것을 먹으면 먹을수록 더 먹고 싶어지듯, 도파민도 실은 마찬가지다. 도파민 분비가 반복되는 사이 자극에 무뎌지고 더욱 강한 자극을 갈구하게 된다. 말하자면 도파민에 노출되는 상황이 잦아질수록, 도파민이 부족하다 느끼는 상황 또한 늘어난다는 뜻이다.
 
물론 당분도 도파민도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신체의 기본 에너지원인 당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이며 도파민 또한 삶에 의욕과 자극을 불어넣는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다만 무엇이나 마찬가지이듯 적절한 정도가 문제일 뿐. 때문인지 최근에는 미디어에서 혈당을 급격하게 오르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자주 소개되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거꾸로 식사법’으로, 식사할 때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순서로 섭취하는 것이다. 이러면 채소의 섬유질이 방어막이 되어 혈당의 급격한 상승을 막아준다고 한다. 어쩌면 도파민에도 비슷한 방법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어제는 잠들기 전 핸드폰으로 뻗는 손을 거두어 책을 집었다. 동영상과 달리 책은 정신을 집중하여 활자를 하나하나 눈에 담아야만 내용 파악이 가능하다. 자연히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다. 답답하던 마음이 책장을 넘기는 동안 차분히 가라앉는 듯하다. 머릿속 뿌연 안개도 조금 걷히는 기분이다. 도파민 조절의 중요성을 실감하며 앞으로는 무엇이 되었든 동영상을 시청하기 전에 무조건 책을 먼저 읽기로 결심한다. 마치 식사 전 채소를 한 입 먼저 먹는 것처럼 말이다. 이것이 도파민 분비를 조절해주길, 그리하여 나의 몸과 마음이 건강히 유지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승혜 작가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