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향응가액 다시 따지라'고 한 이유
‘라임 사태' 김봉현 회장에게 접대 받은 검사 '무죄' 파기환송
"100만원 초과 가능성 있어”…청탁금지법 위반 '유죄' 될수도
2024-10-10 15:05:40 2024-10-10 15:05:40
[뉴스토마토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지난 8일 대법원은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으로부터 술 접대를 받은 혐의로 기소된 검사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깨고 향응가액을 다시 산정하라는 취지로 돌려보냈습니다. 기소된 검사가 받은 향응가액이 100만원을 초과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원심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라임 사태는 개인 투자자 4000여명이 은행과 증권사 등에서 1조6000억원대 피해를 본 사건입니다. 2020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입니다. 김 전 회장은 라임자산운용이 투자한 1000억원대 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30년과 769억원의 추징이 확정됐습니다.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서울남부지법에 출석하는 모습.(사진=뉴시스)
 
검사들이 술 접대를 받은 사실은 김 전 회장의 폭로로 드러났습니다. 김 전 회장이 검사 출신 변호사 1명과 함께 검사 3명에게 서울 청담동 소재 룸살롱에서 1000만원 상당의 술 접대를 했다고 밝힌 겁니다. 이후 서울남부지검은 조사를 통해 김 전 회장과 검사 출신 변호사, 검사 1명만을 기소했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불기소된 검사 2명은 밴드와 접객원이 오기 전 자리를 떴습니다. 총 술값 536만원에서 밴드와 접객원 비용 55만원을 제외한 481만원을 당시 현장에 있던 5명으로 나누면 접대비가 96만2000원으로 계산되므로 먼저 자리를 떠난 검사 2명의 향응가액은 형사처벌 기준인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겁니다. 검찰의 이런 계산법을 놓고 당시 여론에선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은 이른바 ‘그랜저 검사’, ‘벤츠 검사’ 등 법조비리 사건이 계기가 됐습니다. 법조 비리 여파로 공직자가 연루된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근절하자는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급기야 2015년 청탁금지법이 제정되고 2016년 9월28일 시행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청탁금지법 제8조 제1항은 공직자가 어떤 명목으로든 1회 100만원 이상의 금품 등을 수수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라임 사태에서의 술 접대 사건도 직무 관련성이나 대가성이 입증되기는 힘들어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만 기소됐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한 3명의 검사 중 2명은 공교롭게도 100만원이라는 기준에 3만8000원이 부족해 기소도 되지 않은 겁니다.
 
김 전 회장과, 검사 출신 변호사는 공모해서 공직자에게 1회 100만원을 초과하는 향응을 제공한 혐의로, 검사 1명은 1회에 100만원을 초과하는 향응 등을 제공받은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1심과 2심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1심과 2심은 기소된 검사가 참석한 술자리 중간에 참석한 다른 2명이 더 있었는데, 이들은 김 전 회장과 변호사가 초대한 사람들이었으므로 이들이 향유한 부분의 금액까지 검사가 받은 향응가액에 포함되면 안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이렇게 향응가액을 산정하면 93만9167원이 되므로 1회 100만원을 초과한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이 사건 술자리는 김 전 회장이 검사 3명에게 향응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고, 중간에 참석한 다른 2명 중 1명 A는 김 전 회장과의 친분으로 우연히 참석하게 된 것이며, 기소된 검사는 대부분 시간 동안 술자리에 있었던 반면 나머지 검사 2명과 우연히 참석한 A는 참석 시각과 머무른 시각이 다른 점 △중간에 참석한 2명 중 다른 1명 B는 다른 호실에 있다가 김 전 회장의 권유나 지시에 따라 잠시 이 사건 술자리에 머문 것으로 독립적으로 또는 함께 향응을 소비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여러 사정에 따라 참석자별 비용을 객관적이고 규범적으로 판단해 이를 구분할 수 있다면 그에 따라 안분해야 하는 점 등을 고려하면, 기소된 검사가 제공받은 향응가액이 1회 100만원을 초과할 가능성이 상당한데도 원심판결이 청탁금지법 위반죄 성립과 관련해 향응가액 산정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본 겁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받은 향응가액을 산정할 때는 먼저 피고인의 접대에 들어간 비용과 향응제공자가 소비한 비용을 가려낸 후, 전자의 금액을 피고인이 받은 향응가액으로 하고, 만일 각자에 들어간 비용이 불분명하면 평등하게 분할한 금액을 피고인이 받은 향응가액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향응가액 산정의 기존 법리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참석자가 제공받은 향응가액이 피고인의 그것과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을 검사가 증명한 경우에는 다르다고 봤습니다. 다른 참석자가 제공받은 향응가액을 구분하여 총비용에서 이를 공제하고, 남은 가액을 향응제공자를 포함한 나머지 참석자들 사이에서 안분한 금액으로 피고인에 대한 향응가액을 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 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입니다. 법이 형사처벌 기준으로 정한 100만원만 안 넘으면 괜찮다는 식의 면죄부를 주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법에 허점이 있더라도 제대로 된 사법 체계를 갖춘 나라라면 입법을 통한 해결이 되기까지 사법기관이 법리적으로 가능한 범위에서는 합법적으로 그 허점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할 것입니다.
 
김민승 법률전문기자 lawyerms@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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