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주당 83만원에서 89만원으로 올렸습니다.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공개매수는 일단 14일에 종료합니다. 하지만 지분경쟁의 결말은 안갯속이고 쉽게 끝날 모양새도 아닙니다. 투자자들로선 나쁠 게 없습니다. 당장 MBK 측 공개매수에 주식을 넘기고 받은 돈으로 주식을 재매수, 23일로 예정된 자사주 공개매수에 또 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의 경영권 분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11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 건물 내부 안내문에 고려아연 안내문이 놓여 있다. 고려아연은 이날 8시 종로구 본사에서 이사회를 개최한다고 이사진들에게 통보했다.(사진=뉴시스)
‘83만원→89만원’ 지분경쟁 우위?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자기주식 취득결정 정정신고를 통해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기존 83만원에서 89만원으로 조정했습니다. 자사주 매입 수량도 320만9009주에서 362만3075주로 늘렸습니다. 이는 전체 발행주식의 15.5%에서 17.5%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이에 따라 자사주 매입에 투입하는 자금도 2조6635억원에서 3조2245억원으로 대폭 증가하게 됐습니다.
다만 23일로 예고했던 공개매수 기간은 변동이 없습니다. 이날이 기간 연장이 가능한 기한이었기에 사측이 더 많은 주식을 확보하기 위해 공개매수 기간을 늘릴지 귀추가 주목됐습니다.
MBK와 영풍 연합은 이미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지 않겠다고 공언한 뒤여서 얼핏 보면 고려아연이 우위를 점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결론을 예단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분 전쟁을 벌이는 양측을 제외한 나머지 주주들로서는 공개매수 가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번의 공개매수 기회를 모두 활용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투자자, 보유주식 전량 처분이 중요
MBK와 영풍의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는 14일에 끝납니다. 이 공개매수에 참여하기 위해선 10일까지 주식을 매수 보유해야 합니다. 이제 신규 주주의 참여는 불가능하고 현재 고려아연 주식을 보유한 주주들만 응할 수 있습니다.
14일에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들은 17일에 MBK와 영풍 계좌로 주식이 넘어가게 됩니다. 공개매수로 얼마나 많은 주식을 모았는지도 이날 공시로 확인 가능합니다.
또한 17일엔 공개매수 대금도 지급됩니다. 공개매수를 주관하고 있는 NH투자증권 관계자에 따르면 오전 중에 계좌로 매도 대금이 입금될 예정입니다.
이 돈으로 다시 고려아연 주식을 매수해 사측의 자사주 공개매수에 또 한 번 응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수는 23일에 끝날 예정이어서 2영업일 전인 21일까지만 매수, 보유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공개매수 가격은 고려아연이 제시한 89만원이 더 높지만, 양측 모두 매수를 예고한 수량에 제한을 둔 상태입니다. 주식 보유자로선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응한다고 해서 보유 주식 전량을 넘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현재 공개매수 가격이 고려아연의 기업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만큼 지분 전쟁이 끝난 후엔 주가가 하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만약 공매도가 중단된 상태가 아니었다면 주가가 이만큼 오르지는 않았을 거란 지적도 있습니다. 공매도가 있었다면 손쉽게 차익거래가 가능해 주가 괴리도가 실제 주식 가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식선물 가격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2월 만기 고려아연 주식선물 가격은 현재가보다 낮은 67만원대에 형성돼 있습니다.
따라서 투자자 입장에선 83만원에 넘기느냐 89만원에 주느냐보다 보유 주식 전부를 이 가격대에 처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14일에 MBK 측 공개매수에 보유 주식을 넘긴 후 안분비례에 따라 남은 주식은 23일까지 고려아연 자사주 공개매수에 넘기는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양측 공개매수 성공시 유통주식 거의 사라져
물론 첫 번째 공개매수 대금으로 주식을 추가 매수해 두 번째 공개매수에 응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고려아연 측 공개매수에 응할 때쯤엔 양측이 확보한 주식 외에 시장에 남아 있는 주식이 많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돼 보유 주식을 대부분 넘길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입니다.
9월 말 기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베인캐피탈 등 그의 우군이 확보한 지분은 34%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에 맞서는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과 MBK 측이 모은 지분은 약 33%입니다.
양측이 보유한 67%를 뺀 나머지 주식이 약 33%입니다. 여기에 고려아연이 이번에 공개매수 수량을 17.5%로 늘리겠다고 발표했고, MBK·영풍은 최대 14.6%를 예고했습니다. 공개매수 가능 주식지분만 약 32%로 남은 주식의 대부분입니다. 그중엔 국민연금 보유지분 7.83%도 있습니다. 국민연금 또한 공개매수에 응할 것으로 예상되나 그러지 않을 경우 일반 주주들의 보유 주식은 전부 공개매수가로 처분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개인이나 주주명부에 오르지 않은 기관들의 보유 주식 역시 공개매수 과정에서 대부분 흡수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공개매수 과정에서 돌발변수가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일반 주주들은 꽃놀이패를 쥔 셈입니다.
또한 양측의 공개매수가 끝난 뒤엔 시장에 남는 유동주식은 극소량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때까지도 승부가 결정되지 않는다면 남은 주식의 몸값은 더욱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같은 판세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는 변수는 법원의 판결입니다. 현재 MBK는 고려아연이 대규모 차입을 통해 공개매수를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 재무구조에 악영향을 주는 배임이라며 법원에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냈습니다. 이 결과가 18일 전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고려아연 측의 자사주 공개매수는 취소될 수 있습니다. 최저 83만원 매수 약속에도 주가가 80만원을 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금융감독원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부담입니다.
양측의 지분 전쟁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 알 수 없기에 주목도는 더 높아졌습니다. 주주들은 계산기 두드리며 득실을 따지고 있고 시장 참여자들은 흥미롭게 관전하고 있습니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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