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2021년 9월까지만 해도 제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이길 것으로 예측했다. 노태우-김영삼 정권 10년, 김대중-노무현 10년, 이명박-박근혜 9년을 겪으며 세워진 '연속 집권의 법칙' 때문이었다(10월에 실시된 유력 후보 사법리스크 관련 여론조사가 뜨고 나서 윤석열 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약간 더 높다고 예측을 바꿨다). 그러나 2022년 3월, 30년을 이어온 연속 집권의 역사는 깨졌다. 미국도 로널드 레이건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연속 집권의 법칙을 세웠었지만, 2020년에는 공화당이, 올해는 민주당이 연속 집권에 실패했다.
한국과 미국에서 정권교체는 다음 대선에서 또 일어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에 흥분하고 있지만, 대선 전에 형이 확정되지 않거나 야당이 전열을 바꾸고 대선 주자를 교체한다면,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국민 분노가 축적된 탓에 얼마든 정권이 교체될 수 있는 국면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불만은 정권을 주요 과녁으로 삼는다. 정권 교체는 '새로 정권을 잡은 쪽이 과녁이 될 차례가 왔다'는 뜻이다. 바이든 행정부와 해리스 후보를 괴롭힌 민생 문제와 대외 문제는 트럼프의 손으로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다. 결과가 나쁘면 다음에는 공화당이 당한다.
각 정당에서 강성 지지층이 준동하고 있지만 그 정당에 투표하는 사람 상당수는 충성도가 낮다. 이렇게 '마지못해 찍어주는 유권자'들의 마음속에서는 '그래도 A당이 B당보다는 낫다. 그쪽이 정권을 계속 잡는 게 낫다'는 인내가 '당장 혼 내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는 절박함에 곧잘 패한다. 정치세력을 혼 내주는 방법은 쉽다. 이 당 저 당을 셔틀콕처럼 오가지 않아도 된다. 기권하는 길도 있으니까. 미국 대선에서도 지지 정당 변경자보다 기권자의 힘이 더 컸던 것 같다.
유력 정당에 고정적으로 지지를 보내지 않고 양당 사이를, 또는 투표와 기권 사이를 오가는 유권자는 저소득층에 많다. 고소득층은 당장의 경제 상황을 견딜 여유가 있으므로 세계관과 정견을 유지하기 쉽다. 가계부에 오르지 않는 역사, 언론, 검찰 문제 따위에 집중하기에도 편하다. 이들이 핵심 지지층으로 있는 정당, 그런 정당들이 주도하는 정치는 서민과 빈민에게서 계속 멀어진다. 서민과 빈민은 정치세력을 일상적으로 움직일 힘이 없다. 주어진 선택지 위에서 존재감을 최대화한다. 결국 최악을 응징하는 데 의의를 두며, 당시의 '현 정권'이 최악이라 판단하고 대선 때마다 정권교체를 일으키게 된다.
'매번 정권교체'를 급하게나마 유력 정당들을 길들이는 고육지책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빈민과 서민에게 더 유익한 세상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궁극적으로 응징당하는 세력도 없다. 선거에서 져도 제1야당이자 예비 집권세력이다. 한 번의 집권으로는 풀 수 없는, 1 대 1 구도에서는 풀리기 힘든 과제들이 쌓이면서 기층의 고통도 가중된다. 교착 내지 악순환일 뿐이다.
2연속 집권의 법칙이 깨지고 연속 교체의 시기가 왔듯 언젠가 국면은 또 바뀔 수 있다. 장기 집권 시대가 도래하는 경우도 있다. 뛰어난 역량을 가진 세력과 인물이 기성 구도를 파괴하고 새 질서를 꾸리는 것이다. 선거제도나 헌법을 바꿔야 가능하다? 그걸 바꿀 수 있는 '인간'이 먼저 나타나야 한다. 미국 뉴딜, 스웨덴 사민당, 독일 기민련 등이 모델이다. 저소득층을 모으고 일으키는 진보 혹은 저소득층을 포용하고 통합하는 보수다. 연속 교체든 장기 집권이든 저소득층에 달렸다.
김수민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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