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버린 AI'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가의 주권, 자주권을 의미하는 소버린(Sovereign)이 인공지능(AI) 등 정보와 기술 영역까지 확장돼 담론을 일으키고 있는 것인데요. 오프라인 세상 만큼이나 온라인 세상이 중요해진 요즘 같은 때, 소버린 AI에 대해 논의하는 일은 어찌보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온·오프라인 구분할 것 없이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AI 기술을 특정 국가나 기업이 독식한다면 그 부작용은 불보듯 뻔하기 때문입니다.
AI에는 여러가지 분야가 있지만 그 중 초거대언어모델(LLM) 분야에서 '소버린 AI'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데요. LLM은 데이터로 사전 학습된 초대형 딥 러닝 모델을 말하는데, 여기서 어떤 언어로 된 데이터를 활용하느냐가 결국 이 LLM의 특성을 결정짓게 됩니다. 흔히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고 하죠. 결국 한국인에게는 한국어를 제대로 이해하는 LLM이 필요할 겁니다.
문제는 비용입니다. 궁극적으로는 LLM이 인간의 두뇌를 모방하고자 하는 만큼 막대한 개발 비용이 투입되는데요. 하루가 멀다하고 전해지는 뉴스 속 해외 빅테크들이 LLM 개발을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얘기는 한국 기업들에도 적지 않은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LLM 개발의 경우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구하는 것이 핵심인데 이 비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데다 GPU를 구할래도 구하기 힘든 공급과 수요 불균형 상태가 계속해서 빚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목됩니다.
소버린 AI에서 국가의 역할론이 부각되는 데는 이같은 배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국가 주도 정책이 민간에 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지만 천문학적인 비용 문제 때문에 LLM 만큼은 국가적 차원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는 것이죠. 오픈AI나 구글, 앤트로픽, 메타, MS에 이르기까지 미국 유수의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지는 못하더라도 대안적 위치에는 이르러야 소버린 AI를 담보할 수 있습니다.
대안적 LLM의 지위에 근접한 해외 기업들이 이미 존재합니다. 국가의 전폭적 지원을 받고 있다는 프랑스의 미스트랄 AI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데이터브릭스 벤처스 등의 투자를 유치했고요. 중국의 문샷 AI는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이 투자했습니다. 핀란드의 사일로 AI는 최근 미국 AMD가 인수하면서 조금 다른 국면으로 흘러가는 중이긴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의 LLM 분야 대표 기업은 누구일까요? 현재 LLM에 매진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네이버, LG AI연구원, SK텔레콤, 삼성전자 등을 꼽을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하나 도드라지는 기업, 한국을 대표하는 AI 기업이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궁색해집니다.
자본이 경쟁력으로 곧장 이어지는 AI 시장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AI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은 국가AI위원회, 그리고 관련 부처의 역할이 중요한 시점입니다. 현실적으로 보면 한국 대표 AI 기업을 키운다는 명목 아래 모든 기업을 골고루 지원할 수도 없고, 사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안 그래도 자본력에서 글로벌 빅테크에 한창 뒤처지는 마당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상황이니까요. 다만 전략적 지원이되, 원칙이 바로 선 지원이어야 합니다. 정부로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겠지만 시간을 지체하면 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민관이 함께 사안의 시급성에 대해 공감하며 자주 머리를 맞대는 것이 필요합니다. LLM에 몰두하는 기업마다의 경쟁력과 목표지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이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소버린 AI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하나하나 판단해나가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방법일 수 있습니다.
부디 너무 늦지 않게 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정책이 나올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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