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지웅 기자] 이재명 민주당 대표에 677조원 나라 살림이 '볼모'로 잡혔습니다. 야당이 단독으로 '감액 예산안' 처리를 시도한 건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요. 특수활동비 남용을 막는다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이재명표 예산 확보'가 주목적입니다. 국회 예산안 처리는 4년 연속으로 법정시한을 넘기게 됐습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1일 경북 포항시 북구 죽도시장에서 즉석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감액 폭주 끝엔…이재명 대권가도
우원식 국회의장은 2일 민주당이 단독 처리한 감액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걸 보류했습니다. 그는 대신 "오는 10일까지 여야가 합의안을 도출하라"고 강력히 촉구했습니다.
우 의장은 "'오늘이 내년도 예산안 처리 법정시한이지만, 현재로선 예산안 처리가 국민께 희망을 드리기 어렵다"며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성의 있는 논의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라고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수당은 다수당으로서, 여당은 집권당으로서 그에 걸맞은 책임을 다하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며 "합의를 위한 최선의 노력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는 정부를 향해서도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얼마나 존중했고, 충실히 뒷받침했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자성과 태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당초 정부가 제출한 677조4000억원에서 4조1000억원을 삭감한 내년도 예산안 수정안을 단독으로 가결했습니다. 수정안 핵심은 '특수활동비'와 '특정업무경비' 전액 삭감입니다.
△대통령비서실·국가안보실 특활비 82억5100만원 △검찰 특활비 80억900만원, 특경비 506억9100만원 △감사원 특활비 15억1900만원, 특경비 45억1900만원 △경찰청 특활비 31억6700만원 등입니다.
이는 '이재명표 예산' 증액을 끌어내기 위한, 민주당의 압박 카드라는 게 중론입니다. 앞서 민주당은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와 '고교무상교육' 사업 등 '6대 미래예산'을 발표하고, 이번 예산심사에서 관철하겠다고 공언했는데요. 이들 사업은 대부분 이 대표가 주창하는 '먹사니즘'(먹고 사는 문제)와 관련 있습니다.
결국 이번 예산안 심사의 초점은 '이재명 대권가도'에 맞춰져 있단 평가입니다. 그러나 정부는 민주당이 가장 공들이고 있는 지역화폐 예산을 3년 연속 '0원'으로 편성했는데요. 국민의힘도 이 사업을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으로 규정하고 반대해 왔습니다. 민주당은 예산 협상 과정에서, 2조원의 지역화폐 예산 증액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겉과 속 다른 '겁박 정치'…"민주당에도 부담"
민주당은 '쉬운 길'을 택한 모양새입니다. 국회가 정부 안에서 예산을 늘리거나 새로운 예산 항목을 신설하려면 정부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감액은 정부 동의 없이 가능하다는 점을 노린 건데요. 정부가 이재명표 예산을 포함해 증액안을 가져오면, 그때 가서 협상한다는 전략입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이 다수당의 지위를 악용해 '겁박 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실제 민주당의 감액 예산안이 강행하게 되면, '이재명표'인 지역화폐(2조원)와 호남 고속철(277억원) 예산 증액도 무산됩니다. 신재생에너지 금융지원(2000억원), 인공지능 연구용 컴퓨팅 지원 프로젝트(3217억원)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말 그대로 '벼랑 끝 전술'인 겁니다.
특활비 전액 삭감에 대해서도, 야권 내 비판 목소리가 나옵니다. 검찰·감사원 등이 자초한 측면이 있으나, 전액 삭감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인데요.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전액삭감은 과하다"며 "문재인정부 혹은, 윤석열정부가 약속했던 '대통령실 슬림화' 수준으로 하는 게 어떻겠냐"며 반대했습니다.
그간 야당은 큰 틀에서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존중하되, 협상을 통해 각 정당의 정책을 실현할 예산을 배분하는 게 관례였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은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는데요.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2025년도 예산안 상정이 연기한 데 대해 "대통령비서실·검찰·경찰·감사원 등의 특수활동비는 양보할 의사가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는 '정부여당이 민주당이 요구하는 민생예산을 가져올 경우, 특활비를 양보할 수 있냐'는 질문엔 "노 코멘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속사정은 다른데요. 한 민주당 관계자는 "'겉과 속이 다르다'는 추경호 원내대표의 비판이 맞긴 하다"며 "지금과 같은 감액안이 의결되는 건 민주당에도 너무 큰 부담이라, 그렇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이어 "각 지역구 의원들이 올린 증액안이 시트 작업까지 끝나 있는 상태"라며 "내달 10일 전까지 지역구·상임위 예산 증액을 두고 특활비와 협상에 들어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유지웅 기자 wisema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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