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문성주 기자] 은행권이 자영업자 금융 지원을 위해 조 단위 금액을 추가 출연하기로 했지만, 이런 조치들이 금융 생태계를 어지럽힌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상환 유예와 만기 연장 등이 한시적 조치에 불과한 만큼 향후 부실로 이어질 경우 은행의 대출 문턱만 높일 것이란 분석입니다.
만기 연장 불구 연체율 고공행진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은 앞으로 3년 간 2조원 규모의 재원을 출연하는 '은행권 소상공인 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위해 분할상환과 만기연장 등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상환유예와 만기연장 등의 대출 지원책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지난 2020년부터 시행된 대책과 유사합니다. 원금과 이자를 갚는 것을 미뤄 연장 기간 동안 차주가 대출을 갚을 능력을 기를 시간을 주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조치를 연장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 연체율은 진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기준 은행권의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1년 전보다 0.14%포인트 상승한 0.65%를 기록했습니다. 2022년 10월 말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22%였는데 2년 사이 3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은행권은 만기연장과 상환유예의 방식은 은행의 잠재부실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대출 상환을 늦추는 방식이 이미 수차례 진행됐음에도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몇 년 사이 치솟았다"면서 "내년에도 경제가 어려울 것으로 보여 결국 은행의 건전성 우려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꼬박꼬박 원리금을 갚아온 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일부 악성 차주들을 대상으로 "빚을 갚지 않고 버티면 정부가 언젠가는 도와준다"는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오랜 기간 빚을 갚지 않는 차주가 늘어나면 상환 부담이 이연되고, 결국 은행의 건전성 문제로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은행권이 위험가중자산을 관리하고자 대출 문을 좁히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자영업자의 사업에 대한 사업성 평가와 재기 의지 등을 확인하는 등 선별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빚 상환을 유예하는 방식이 오히려 취약차주의 재기에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강경훈 동국대학교 경영학과 교수는 "조금만 도움을 줘도 빚을 갚을 수 있는 차주도 있지만 오랜 기간 빚을 갚지 못하는 부실 차주의 경우는 결국 상환 부담이 이연될 뿐"이라면서 "은행권이 적극적인 솎아내기를 통해 차주들을 구분하고 관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은행권이 23일 정치적 불확실성 확대로 시름에 잠겨 있는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연 7000억원 규모의 대책을 내놨다. 사진은 소상공인 맞춤형 금융지원 방안 정리 (그래프= 뉴스토마토)
"상환 유예는 부실 이연"
은행권은 폐업 위기에 몰린 소상공인을 지원하고자 연 25만 명의 대출액 14조원에 대해 연간 7000억원의 이자 부담을 경감해주기로 했습니다. 이자 감면액을 현금으로 환급하는 데 초점을 둔 상생금융 시즌1과 달리 이번에는 소상공인의 성실 상환을 유도하는 맞춤형 지원책이라는 설명입니다.
지난 23일 내놓은 '은행권 소상공인 금융지원 방안'은 대출금을 갚기 어렵거나 폐업에 처한 소상공인 20만명에 대해 이자 부담을 연간 5000억원 경감하고, 재기 의지가 있는 사업자 5만명에 1조7000억원의 추가 사업 자금 대출을 지원하는 것이 골자입니다.
이번 지원책으로 연 25만 명의 소상공인에게 대출액 14조 원에 대한 상환 부담이 덜 것으로 보입니다. 소상공인들의 이자 부담은 연간 1210억 원 경감될 것으로 분석됩니다. 국내 20개 은행이 연간 총 부담하는 금액은 약 6000억~7000억 원 수준으로 예상됩니다. 각 은행의 분담액은 대출 규모에 따라 나뉘게 됩니다.
직접적인 현금성 지원은 아니지만 최소 예상치를 산정한 금액인 만큼 신청자가 몰릴 경우 출연금이 더 늘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은행권의 보통주자본비율(CET1) 등 실제 건전성 지표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CET1은 위험가중자산(RWA)을 보통주 자본으로 나눈 것으로, 손실 흡수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금융당국은 단기간 은행 손실이 발생할 수 있지만, 금융지원으로 은행 건전성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부터 자영업자 지원 방안이 꾸준히 있었는데 그때의 대출이 줄기보다는 오히려 더 늘어서 돌아와 올해 개인사업자 건전성이 더욱 나빠졌다"며 "내년에도 소상공인 업황이 좋지 않을 전망인데 연체나 부실가능성이 줄어들지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지난 23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권 소상공인 금융지원 방안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 뉴시스)
문성주 기자 moonsj7092@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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