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국제공항에서 벌어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목숨을 잃은 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하는 것으로 이 글을 시작한다. 유난히 일가족이 피해자가 된 경우가 많아 그 안타까움과 슬픔의 크기에 비하면 말이란 한없이 가볍고 섣부를 수 있어 조심스럽다. 하지만 앞으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재난에서, 당사자일 수도 있을 모든 남겨진 사람들에게는 더 나은 이후를 위해 다짐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리는 이미 여러 차례 이런 참사를 겪었지만, 그 때마다 애도하고 위로하고 기억하는 무능했다. 처음에는 슬픔과 충격으로 온 사회가 들썩거리다가, 시간이 갈수록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격화되고 시민들은 분열되었다. 책임자들은 형사 처벌을 피하기 위해 정작 원인 규명을 위한 증언이 필요할 때는 자기변호와 책임회피에만 급급했다. 그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위로받아야 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오히려 투사가 되어갔고, 일상으로의 회복은 점점 더 늦어졌다. 그 사이 재발 방지를 위해 약속된 안전 대책이 어떻게 마련되고 있는지는 뒷전이 되었다. 또 다른 재난이 그 위에 쌓이고, 한 사건에 따른 문제들은 사건 자체만큼 커진 채, 우리는 지난 10년 안에 일어났던 두 개의 큰 사건, 세월호 침몰 사고와 이태원 참사의 공식적인 마무리, 즉 원인에 대한 규명과 공적 인정, 재발 방지 대책의 수립, 책임 소재의 판별, 배상에 대한 합의라는 의미의 마무리를 보지 못했다. 세월호 침몰에 대한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결국 침몰 원인을 확정짓지 못했고, 이태원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은 제대로 시작되지도 못했다.
언론의 재난 보도 역시 그런 전사회적 무능의 한 측면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언론의 목표이자 기능이라고 하는 ‘진실된 정보의 전달’이 재난과 관련해서 본질적으로 무엇이어야 하냐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피해자들이 직접 남기거나 기록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재난 당시의 상황, 유가족의 울부짖음이나 생존자들의 모습들, 혹은 각자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단지 그것이 사실이라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보여지고 알려져야 하는가? 이는 그저 재난의 전시일 뿐이며 시민들에게는 참혹함에 따른 충격을, 당사자들에게는 상처를 줄 뿐이다. 사건이 일어난 직후 경쟁적으로 전문가를 불러서는 부족한 단서 위에 어느 하나 확답할 수 없는 추정과 설명을 요구하는 일 역시 오히려 혼란을 부추긴다. 그런 보도 관행은 본의 아니게 음모론의 통로가 되거나 섣불리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는 근거로 잘못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알려진다 해서 한 사건의 심층적 원인이 더 잘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일일수록 차분하게 당국과 전문가들의 신중한 판단만이 유의미할 수 있다.
한편, 어떤 재난이 터질 때마다, 시민들 중 일부가 “슬픔을 강요하지 말라”는 태도를 내보인다. 인간의 이런 반사회적인 성향을 완전히 뿌리뽑을 수는 없겠지만, 이런 목소리가 적극적인 통로를 찾거나 특정 정치적 이익에 따라 교묘하게 이용되는 관행들은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몇몇 정치세력은 재난이 일어난 직후에는 유가족과 함께 눈물을 흘리고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면서도, 사태가 장기화되고 책임이 드러나자 은근슬쩍 그런 반사회적 정서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유가족을 고립시키고 사건의 해결을 더 요원하게 만들었던 것을 우리는 보았다. 이러한 전사회적 애도와 위로의 무능이 이번에는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노경호 독일 본대학 철학박사과정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