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안팎의 주권 침탈세력과 반국가세력의 준동으로 대한민국이 위험합니다.” 황당한 비상계엄으로 나라를 이렇게 흔들어 놓은 당사자가 하는 말이다. 망상에 더 빠진 듯하다. 탄핵을 반대하는 지지자 집회를 격려하며 자신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아 달라는 듯 윤 대통령이 내놓은 메시지다. 유튜브로 지지 집회를 보고 있다는 걸 보니 민심과 유리된 유튜브 동굴에 빠져 있다. 신속한 탄핵 심판과 사법적 처리 외에는 해법이 없어 보인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설령 탄핵 파면을 피하더라도 대통령으로의 복귀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그동안의 진영정치가 남긴 후유증이 탄핵 정국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헌재 재판관 임명 문제가 쟁점이 됐다. 그동안 결원이 된 재판관을 충원하지 않고 방치한 결과다. 정파적 이해관계 때문이었다. 한때는 탄핵심판 자체보다 정권세력의 직무정지 효과를 노렸던 야당이 방치했고,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에는 여당이 탄핵 심판을 지체시키려고 그랬다. 여당의 지체 배경에는 야당의 사법적 책임을 둘러싼 시간 싸움이 걸려 있었다. 물론 야당은 반대로 탄핵과 조기대선으로 사법리스크를 면탈하고자 했다. 입법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야당은 다시 추가 탄핵에 대한 압박과 내란 공세로 탄핵정국을 주도하려 한다.
정권 세력에 대한 야당의 탄핵 압박과 이에 대한 여당의 방어라는 적대적이면서도 상호의존적인 진영정치가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에도 이어지는 셈이다. 야당은 한덕수 대통령 대행에 대한 탄핵소추까지 나아갔다. 한덕수 당시 대행이 여야의 타협을 촉구하면서 헌재 재판관 임명을 미루자 바로 탄핵소추를 해버렸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명분으로 삼았던 야당의 탄핵정치가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에도 그대로다. 한덕수 대행을 승계한 최상묵 대행에게도 탄핵 경고를 했고, 이어지는 다른 국무위원에게도 계속될 수 있다면서 초유의 탄핵정치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탄핵은 대의민주주의의 제도적 장치지만 정상적인 대의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는 최후의 상태에서 나올 수 있는 비상조치다. 앞으로 탄핵정치 이론에서 한국은 특별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초했다. 자폭이다. 한덕수 대행에게도 이어진 탄핵소추는, 헌재가 판단할 일지만, 과도한 조치였다. 탄핵소추 정족수 논란의 여지도 크고, 탄핵 사유도 그렇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은 후속 탄핵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정권 세력을 내란 동조세력으로 몰았다. 반면에 여당은 야당의 탄핵정치와 내란 공세가 오히려 국정을 마비시키는 내란이라고 역공한다. 국정을 책임졌던 대통령의 계속되는 망상, 탄핵정치로 사법리스크를 면탈하려는 야당의 전략이 무정부 상태를 만들고 있다. 망상과 카르텔 권력이 민주공화국을 흔들고 있다. 그나마 재판관 2명을 임명하는 절충안을 낸 최상목 대행체제가 국정 안정의 구심점이 되길 기대한다.
‘오징어게임’이 마치 우리의 정치현장인 듯하다. 절망에서 비롯된 욕망의 생사 게임처럼 민주공화국의 가치도 공의도 벗어버린 권력투쟁의 전쟁이 한국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해법의 출발은 조속한 헌재 결정과 사법 조치의 이행이다. 탄핵 심판과 내란죄 수사 뿐 아니라, 이재명 대표에 대한 재판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사법부가 무너지는 민주공화국 체제의 보루다. 이미 자폭한 대통령의 탄핵 절차 못지않게,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해소가 한국정치 정상화의 중요한 변수다. 탄압으로부터의 해방이든 사법적 책임을 묻든 조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아수라의 오징어게임 정국에서 벗어나는 희망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항공참사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에게 위로를 보냅니다.
김만흠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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