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전연주 기자] 내란전담재판부, 대법관 증원 등 국회 사법개혁을 앞두고 법원이 사흘간(9~11일) 공청회를 열었지만, 사법부를 향한 비판 여론을 의식하고 자성하자는 목소리는 없었습니다. 이에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김선수 전 대법관 등 법조계 원로들은 공청회 마지막날인 11일 “법원이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를 지적하며 사법개혁에 힘을 실었습니다. 이들은 “12·3 계엄 1년이 지났는데도 내란사건이 단 한 사건도 선고되지 않은 건 문제가 있다”면서 “몇몇 사건 처리 관련 국민의 분노를 이해한다”라고 했습니다.
윤석열씨 탄핵심판 당시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맡은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열린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 : 방향과 과제 3일차 종합토론 '대한민국 사법부가 나아갈 길에 참석해 김선수 사법연수원 석좌교수(전 대법관)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대법원 사법행정기구인 법원행정처는 지난 9일부터 이날까지 사흘간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법률신문과 공동으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앞서 이틀간의 공청회에선 △재판 지연 △판결서 공개·재판 중계 등 공정성 및 투명성 강화 △노동법원 설치·국민참여재판 확대 등 사법참여 확대 △압수수색·인신구속 등 인권보장 개선 △상고제도 개편과 대법관 증원 등이 주로 논의됐습니다.
현직 법관들과 학계, 전문가 등이 참여해 사법부의 오래된 문제를 총망라했지만, 사법개혁에 관한 목소리와 원인은 살피지 않은 모습이었습니다. 윤석열씨 구속취소 결정,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파기환송, 내란재판 지연 등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다뤄지지 않은 겁니다.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시점에서 사법부 안팎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로 공청회를 열었으나, 정작 ‘안팎의 목소리’는 외면했다는 지적이 불가피합니다. 그동안 대법원은 물론 전국법원장회의·전국법관대표회의가 민주당 사법개혁안의 위헌·위법성을 지적하며 반대만 했던 태도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성 없는 법원을 향한 질타는 공청회 마지막날 터져 나왔습니다. 공청회 3일차인 이날 김 전 대법관을 좌장으로 문 전 재판관, 조재연 전 대법관, 박은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전 국민권익위원장) 등이 ‘대한민국 사법부가 나아갈 길’에 관해 종합토론을 했습니다.
김 전 대법관은 국민이 사법부를 불신하게 된 원인을 정확히 짚으며 현직 후배들에게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그는 “현재 우리 법원은 침몰하기 직전 난파선과 같은 상황”이라며 “지난 3월7일 (지귀연 재판부의 윤석열씨) 구속취소 결정과 5월1일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거대한 암초를 들이박고 좌초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대법관은 “(이런 상태에서) 내란 관련 형사사건에서 일부 법관들의 이해할 수 없는 진행과 특검의 영장 청구에 대한 기각 결정 등 국민들 관점에서 내란 극복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하는 행태로 (법원이) 배 바닥에 폭탄을 던져 침몰을 독촉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문 전 재판관도 법원이 스스로 신뢰를 잃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사법부는 재판 독립과 신뢰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로 굴러간다”며 “그런 관점에서 돌이켜보면 비상계엄이 1년 지났는데도 내란사건(재판)이 단 한 사건도 선고되지 않았다는 건 문제가 있다. 더욱이 구속기간을 '날'로 계산하는 확고한 관행이 있는데, 시간으로 변경해 내란수괴 사건에 적용하는 건 위기를 자초했다”고 비판했습니다.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 : 방향과 과제 3일차 종합토론 '대한민국 사법부가 나아갈 길'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대법원)
법조 원로들은 사법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취지의 발언도 했습니다. 문 전 재판관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사건 배당에 법원 외부 인사가 관여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처분적 법률이라고 해서 곧바로 위헌은 아니다. 예외적 정당성을 따져야 하는데 내란전담부는 예외적 정당성을 긍정하기 좋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그는 “법원이 신속하게 내란사건을 처리해 특별법의 제정 계기를 없애는 게 왕도”라며 “휴먼 에러와 시스템 에러가 섞인 상태에서 제도 개선을 할 순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문 전 재판관은 대법관 증원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8명까지 증원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대법원 임명은 세 주체(입법·행정·사법)가 관여한다”며 “총선을 치른 뒤 4명을 증원함으로써 야당도 대법원 구성에 관여할 기회를 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대법관 더 나아가 민주당 개혁안과 같은 대법관 12명 증원에 찬성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법관이 12명 늘면 재판연구관은 100명으로 늘어 하급심이 불안정해진다는 주장은 부정확하고 지나친 과장”이라며 “대법관 증원에 따른 하급심 약화 우려는 20년 전에도 같다. 그동안 뭘 하고 지금 와서 또다시 반대 논거로 동원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선배 원로들은 현직 후배들을 위한 당부의 목소리도 잊지 않았습니다. 문 전 재판관은 “사법개혁에 찬성한다. 몇몇 사건 처리 관련 국민의 분노를 이해한다”면서도 “ 분노는 사법개혁 동력이 될 수 있지만 내용이 될 순 없다. 여당이 국회 과반수 의석 갖는 한 문제는 사법개혁 실현할 방안인가, 정당성을 확보하는가가 문제다. 이걸 높이는 절차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김 전 대법관도 “법원이 내란극복에 적극 임해야만 한다”며 “내란재판 공정성 불신을 먼저 적극 해소하고 전담재판부와 관련해 신뢰 조치를 취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법개혁 1라운드를 마무리하고 차분히 2라운드를 진행해 국민에 필요한 사법개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전연주 기자 kiteju10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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