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출산율 0.7’ 삶의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2026-01-23 06:00:00 2026-01-23 06:00:00
2020년 합계출산율 0.8명 선이 붕괴된 이후, 2024년 0.7명이라는 수치는 우리 사회에 거대한 충격을 던졌다. 통계청이 발표하는 인구 동향은 이제 단순한 지표를 넘어 국가 존립의 임계점을 가리키고 있다. 출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은 ‘데드크로스(Dead Cross)’는 이미 일시적 현상을 넘어 상수가 되었고, 인구 감소는 더 이상 먼 미래의 시나리오가 아닌 현재진행형의 재난이다.
 
특히 지역 소멸의 위기는 더욱 구체적이다. 전국 228개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절반 이상이 소멸위험지역으로 진입했으며, 2047년경에는 수도권 일부를 제외한 전국 대부분의 지역이 소멸 위험 단계에 처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방의 공동화는 단순히 인구가 줄어드는 문제를 넘어, 국가 전체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수도권 쏠림 현상을 가속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되고 있다.
 
지난 20여년간 정부는 저출생 대응을 위해 천문학적인 예산을 투입해왔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기존 정책의 가장 큰 패인은 저출생을 ‘출산율’이라는 단편적인 수치의 문제로만 접근했다는 점에 있다. 출산장려금 지급이나 일회성 수당 지원과 같은 단기 처방은 개인의 삶의 궤적을 근본적으로 바꾸기에 역부족이었다.
 
결혼과 출산은 국가의 장려에 의한 ‘의무’가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며 내리는 ‘합리적 선택’의 결과다. 하지만 기존의 정책은 이 선택의 배경이 되는 사회적 공기(空氣)를 바꾸는 데 실패했다. 숫자 중심의 캠페인과 목표 수치 제시는 오히려 당사자인 청년 세대에게 국가의 도구로 전락했다는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정책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이어졌다.
 
저출생의 본질은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키울 수 없는 환경’에 있다. 우리 사회에서 돌봄은 여전히 공적 영역보다는 사적 영역, 특히 여성의 희생에 의존하고 있다. 제도적으로는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가 마련되어 있으나, 조직 내부의 보이지 않는 압박과 인사상 불이익은 여전히 존재한다. 돌봄 공백은 곧 경력 단절로 직결되며, 이는 개인의 자아실현을 가로막는 결정적 장애물이 된다.
 
세계는 지금 한국을 ‘전례 없는 소멸 실험장’으로 주목하고 있다. 외신들이 한국의 저출생을 전쟁이나 전염병보다 위험하다고 경고하는 이유는 인구 감소의 속도 자체가 아니라, 그 이면에 깔린 극심한 경쟁 중심의 사회 구조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행위가 사회에서 낙오되거나 한발 물러나야 하는 '비용'으로 취급되는 한, 어떤 파격적인 지원금도 출산율의 반등을 이끌어낼 수 없다.
 
이제 정책의 목표는 ‘출산 장려’에서 ‘삶의 질 개선’으로 완전히 이동해야 한다. 국가가 아이를 낳으라고 설득하는 사회가 아니라, 아이와 부모가 함께 존중받는 사회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저출생 대응을 위한 정책은 ‘출산 장려’에서 ‘삶의 질 개선’으로 완전히 이동해야 한다. (사진=뉴시스)
 
첫째, 돌봄의 완전한 사회적 책임제다. 돌봄을 개별 가족의 몫으로 남겨두지 않고 공공 시스템이 촘촘하게 뒷받침해야 한다. 둘째,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개선이다. 일과 가정이 양립 가능하도록 장시간 노동 관행을 타파하고, 육아기 부모가 불이익 없이 노동할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셋째, 다양한 가족 형태의 포용이다. 결혼 제도 안의 출산만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협소한 시각에서 벗어나, 모든 생명이 안전하고 환영받으며 자랄 수 있는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출산율 0.7은 우리 사회가 보내는 마지막 경고음이다. 이 숫자는 단순히 인구의 통계가 아니라, 지금의 한국 사회가 다음 세대를 맞이하기에 얼마나 가혹한 환경인지를 보여주는 '성적표'다. 원인을 외면한 채 수치에만 매몰된 정책은 공허할 뿐이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낳게 할 것인가’라는 오만한 질문을 멈춰야 한다. 대신 ‘어떻게 하면 우리가 함께 잘 살 수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출산은 정책의 목표가 될 수 없으며, 오직 인간다운 삶이 보장될 때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는 ‘희망의 결과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인구 위기 극복의 열쇠는 돈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돌봄의 가치를 회복하는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대전환에 있다.
 
이정원 쉼표힐링팜 CEO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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