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무회의 실황 중계와 투명한 K-민주주의
2026-02-04 06:00:00 2026-02-04 06:00:00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세 번째 국무회의(2025년 6월19일)에서 국무회의를 공개하는 것을 검토하도록 지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부가 정책을 결정해 일방적으로 통보해서 시행하는 것보다 국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정책이 결정되었는지를 알 때 그 정책의 국민 수용성이 높아진다.” 
 
이재명정부 들어서 괄목할 만한 혁신 중 하나는 국무회의나 수석보좌관 회의, 신년 업무계획 보고, 타운홀 미팅 등을 비롯해서 중요 국정 과제 논의를 실황 중계한 것이다. 민주주의 전통이 앞선 유럽에서도 국무회의 실시간 중계는 이례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간혹 일부 국가에서 사전 의제 공개나 사후 결과를 공개하지만 국무회의나 각료회의를 실시간으로 공개하지는 않는다. 
 
희망컨대 이런 국가정책 의사결정 과정의 실시간 공개를 지속하고 차기 정권들도 이를 지속적으로 발전 계승해 전통으로 만들기를 바란다. 단지 실시간 공개에서 끝나지 않고 이를 발전시켜 의견을 수렴하는 국민투표나 제안 시스템을 공개 국무회의나 정책토론 회의와 연동하는 구조를 구축하기를 기대한다. 한국은 이미 2회 연속 OECD 전자정부 평가에서 1위를 한 바 있다. 이미 좋은 평판을 얻은 디지털 정부에다가 투명한 국정 의사결정 과정 시스템이 결합되면 “투명한 참여민주주의 실천”을 핵심 컨셉으로 하는 K-민주주의로 브랜드화할 수 있을 것이다. 국정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필요하면 국민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해 대의제 민주주의의 결점을 보완하는 절반의 직접민주주의 개념을 K-민주주의로 정립하면 국가 이미지는 한층 더 높아질 것이다. 
 
대의 민주주의는 권력을 위임하는 과정에서 여러 구조적 결함이 발생한다. 국민(주인)이 정치인(대리인)에게 권력을 맡겼을 때, 대리인이 주인의 뜻이 아닌 자신의 이익이나 정파의 이익을 우선할 가능성이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정치적 소외와 책임의 공백이다. 4~5년에 한 번씩만 주권자가 되고, 그 사이 기간에는 국민은 국정 의사결정 과정에서 배제된다. 직접민주주의라면 국민이 결정하고 국민이 책임지지만, 대의제에서는 ‘누가 이 결정을 내렸는지’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 정책 결정 과정을 주권자인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필요하면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가 대의민주주의 결점을 보완하는 새 시대의 방향으로 보인다. 이에 더해 정부와 국민 사이에 대리인이나 해석자(언론 등)를 거치지 않고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이 만개했고 여기에 AI 기술이 빠른 속도로 부상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의 민도, 공개와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디지털·AI 인프라, 새로운 민주주의를 구현하려는 지도자의 의지가 있으니, 이런 유리한 조건들은 적극 활용해 민주주의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 기회를 삼았으면 한다. 
 
이재명정부의 새로운 시도를 주목하니 플라톤의 저서 『국가』에 등장하는 '기게스 반지' 우화가 떠오른다. 한 목동이 동굴에서 반지 하나를 발견한다. 끼는 순간 몸이 투명해져 아무도 볼 수 없게 만드는 마법의 반지다. 목동은 궁궐로 들어가 왕비를 범하고 왕비와 결탁해 왕을 죽이고 나라까지 손에 넣는다. 선거로 선출되었지만 전 국민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없는 대의민주주의에서 권력자는 기게스의 반지를 갖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거가 끝나고 의사결정이 밀실로 들어가면 정치인은 국민의 눈을 피해 기게스 반지를 만지면서 사적 이익을 추구할 유혹에 빠진다. 그 결과 국민 의사와 정책결정 사이에 민의의 왜곡이 발생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게스 반지 우화와 더불어 '시중 드는 하인에게 영웅은 없다(No one is hero to his valet)'라는 서양 속담도 생각난다. 이 속담은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도 가장 가까이서 시중 드는 하인인 발렛(valet)에게는 그저 평범하고, 결점 많고, 때로는 비루한 인간일 뿐이라는 의미다. 직접민주주의에서 사안 자체에 집중해 투표하지만, 대의민주주의에서는 사람에 투표해 선출한다. 이 과정에서 실력보다는 이미지가 과대 포장된다. 선거 기간 동안 정치인은 미디어를 통해 자신을 ‘영웅’으로 포장한다. 국민은 정책 수행 능력보다 정치적 수사와 상징에 의존한 정치가를 뽑기도 한다. 
 
기게스 반지는 ‘절대적 은폐’를 상징하고 발렛의 시선은 ‘절대적 노출’을 상징한다. 이미지 정치는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선택적 투명성을 이용한다. 이는 기게스 반지를 끼고 대중을 기만하는 행위다. 국정 의사결정 과정을 공개하는 것은 국민 전체를 발렛으로 임명하는 행위다. 이는 이재명정부가 강조해온 국정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국정이 공개되는 투명한 민주주의에서는 실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기에 이미지에 의존하는 정치인이 설 자리는 없다. 국정 의사결정 과정이 공개되면 토론과 숙의를 거쳐 결론을 도출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정치가로 입문하려는 생각을 버리게 될 것이다. 국민을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발렛으로 대하는 정부는 권력자가 영웅 대접을 포기하는 대신에, 국민의 신뢰라는 더 단단한 기초를 얻게 될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선도하고 국격을 높일 수 있는 K-민주주의다. 
 
김근배 숭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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