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형제복지원·선감학원 등 수십년 전 집단수용시설에서 벌어진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들을 국가가 개입하고 방치한 구조적 국가폭력으로 판단했습니다. 특히 정부가 반복해 제기해 온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는 추세입니다.
시민단체들이 2023년 3월1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앞에서 영화숙·재생원 등 수용감금 복지시설에 대한 직권조사 촉구 피해생존자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난달 28일 부산지법 민사11부(재판장 이호철)는 영화숙·재생원 사건 1심에서 국가와 부산시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국가와 부산시가 피해자 184명에게 511억원 상당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영화숙·재생원은 1951년부터 1976년까지 '부랑아'로 규정된 이들을 강제 수용하며 노역과 구타, 성폭력 등 참혹한 인권유린을 자행한 시설입니다.
비단 영화숙·재생원뿐만이 아닙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진실규명결정을 한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덕성원 등 1950~1990년대 발생한 집단수용시설 사건에서도 원고 승소 판결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법원은 모두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이들 사건은 국가폭력에 의해 발생했으며, 소멸시효 또한 지나지 않았다고 못 박았습니다.
먼저 법원은 과거 시설 내 인권침해에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거나 묵인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2024년 1월 형제복지원 사건 1심 재판부는 "공권력이 적극 개입하거나 묵인 아래 장기간 이뤄진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으로 위법성이 매우 중하다”고 판시했습니다. 형제복지원은 약 12년간 3만8000여명을 감금해 가혹행위를 저지른 시설입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아동·청소년을 강제 수용하고 노역과 폭력을 가한 선감학원 사건 역시 법원은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해 5월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불법행위는 국가와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장기간 이뤄진 중대한 인권침해 사안"이라며 "위법성의 정도가 매우 중하고 유사한 인권침해 행위가 다시 자행되지 않도록 억제·예방할 필요성이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피해자 13명에게 총33억1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습니다.
또 다른 쟁점이었던 소멸시효 주장도 잇따라 배척됐습니다. 과거사 국가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부가 가장 앞세워온 주장은 '소멸시효가 지난 사건'이라는 겁니다. 하지만 법원은 2020년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국가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을 피해자가 진실을 인지할 수 있었던 시점, 즉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 통지서를 받은 날이라고 판시했습니다. 지난해 12월 강제노역과 가혹행위가 발생한 부산의 아동보호시설 덕성원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은 진실규명 통지를 받은 뒤에야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했다"며 국가와 부산시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판단이 누적되면서 집단수용시설 사건에서는 원고가 승소하는 흐름이 형성됐습니다. 가장 먼저 소송에 나선 형제복지원 사건은 1·2심에서 모두 원고 승소 판결이 나왔고, 지난해 3월 대법원도 심리불속행 기각하면서 판결이 확정됐습니다. 선감학원과 덕성원, 영화숙·재생원 사건에서도 유사한 판단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승소 확정 흐름에는 정부의 대응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지난해 8월 법무부는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등 강제수용 피해자 국가배상 사건에서 피해자들의 신속한 권리 구제를 위해 국가가 제기한 상소를 취하·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14일 덕성원 사건에서도 국가가 항소를 포기한 가운데, 영화숙·재생원 사건 1심에서 종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법조계에서는 집단수용시설 사건을 국가폭력으로 판단하는 사법부의 기준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선감학원 피해자 변호단의 일원인 하주희 법무법인 율립 변호사는 "권위주의 시대에 발생한 국가폭력에 대해 책임을 묻고, 피해자 명예회복으로 나아가는 사법적 판단의 흐름이 생겼다"이라고 말했습니다. 영화숙·재생원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해마루의 임재성 변호사는 "진화위 결정에 대해 사법부가 이를 존중하는 판단을 일관되게 내리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형제복지원·선감학원·덕성원·영화숙·재생원 사건은 모두 진화위의 진실규명 결정을 거친 사건들입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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