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어 설명: '낙태'는 인공적인 방법을 동원해 태아를 자궁으로부터 분리·사산시키는 행동을 뜻합니다. 해당 행위를 처벌하는 '낙태죄'는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로부터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고, 2021년 1월1일부터 효력이 상실됐습니다. 대신 의료적 시술을 통해 태아를 사산시키는 것엔 '임신중절'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의료적 시술을 받더라도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국가의 보장 의무를 포함한 권리·정책적 개념을 강조할 땐 '임신중지'라는 말을 권장합니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이번 기획기사에서 형법상 죄명을 지칭할 땐 낙태죄를, 시술을 의미할 경우엔 임신중절을, 권리를 강조하려는 맥락에선 임신중지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정주현 수습기자] 이재명정부는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임신중지 법·제도 개선'을 국정과제로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새 정부가 출범하고 8개월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법안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대체입법을 마련해야 할 국회도 7년째 입법공백을 방치하는 중입니다. 특히 민주당은 20대·21대·22대 총선서 내리 원내 제1당을 차지했지만, 종교계 등의 눈치만 보면서 책임을 방기한다는 지적이 제기됩니다.
민주당 "지방선거 전엔 임신중지 논의 못 한다"
2019년 헌재는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2020년 12월31일까지 법 개정을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대체입법 논의는 7년째 기약이 없습니다. 법안이 발의됐어도 상임위원회 논의가 지지부진한 탓입니다. 22대 국회의 경우 임신중지 대체입법안은 4건 발의된 상태입니다. 이 중 민주당 의원 주도로 발의된 3안은 공통적으로 형사처벌 조항을 두지 않고 임신중지를 공적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지원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합니다.
남인순·이수진·박주민 의원이 각각 발의한 모자보건법 일부 개정안은 △약물에 의한 임신중지 허용 △임신중지 종합상담기관 설치 △임신중지 대한 보험급여가 적용 등의 내용을 담았습니다. '주수 제한' 없이 임신중지를 전면 허용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조배숙 의원의 법안은 '임신 10주차 미만'의 임신중지만 허용합니다.
그런데 22대 국회가 개원한 이래 대체입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단 한 차례도 심사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원내 1당이자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이 논의에 소극적인 걸로 풀이됩니다.
보건복지위의 한 관계자는 "지금 9회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논의가 어려운 분위기"라며 "민주당에선 '지선 전엔 임신중지 법안 논의를 안 한다'라고도 선언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국회 관계자도 "종교계 반발이 극심하기도 하고, 지역 의료나 의대 증원 등 현안들 때문에 임신중지 문제는 우선순위에서 계속 뒤로 밀리고 있다"면서 "지금대로라면 임신중지에 관한 대체입법안을 법안소위에 올리는 것도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습니다.
20대·21대 국회에서도 정치적 우선순위나 종교계 의견이 개입되며 입법이 무산된 바 있습니다. 때문에 논의를 차일피일 미루다 22대 때 발의된 법안들마저 앞선 국회들처럼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임신중지 의약품, 국정과제지만…정부안 아직
이재명정부는 출범 당시 임신중지 법·제도 개선을 국정과제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당의 소극적 태도와 맞물리면서 정부안 역시 속도를 내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앞서 이재명정부는 지난해 9월16일 국무회의를 통해 123대 국정과제를 확정했습니다. 여기엔 여성의 안전과 건강권 보장을 주제로, '임신중지 법·제도 개선 및 임신중지 약물 도입'이 명시됐습니다. 과제를 이행할 주관 부처는 성평등가족부로 지정됐습니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성평등부 업무보고에서도 "임신중단 약물 문제 있죠? 이게 어떤 상태에요?"라고 물었고, 원민경 성평등부 장관은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법무부,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협의를 해 내부 방안은 마련됐다"고 말했습니다. 정부안을 마련 중이지만, 공개할 단계는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다만 정부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내부 방안이라는 건 임신중지를 처벌하는) 형법 개정에 대한 게 아니라, 모자보건법 위주로 논의 중"이라고 했습니다.
식약처 허가 연기…'미프진', 5년째 도입 지연
물론 임신중지에 관한 조치는 국회에만 책임이 있는 게 아닙니다. 한 국회 관계자는 "입법만 기다릴 게 아니라 당장 시급한 임신중지 의약품부터 도입해야 한다"며 "이건 식약처 재량껏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남인순 의원실에 따르면, 식약처는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과 관련해 국내 4개 로펌으로부터 총 6건에 걸쳐 법률 자문을 받았고, 이 가운데 4건은 '형법·모자보건법 개정 없이도 품목허가가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식약처 관계자는 <뉴스토마토>와의 통화에서 "형법과 모자보건법 개정 없이는 임신중지 의약품 도입은 불가능하다"는 입장만 반복하고 있습니다. 식약처의 이런 입장 탓에 국내에선 몇 년째 임신중지 약물인 미프지미소(미프진)이 도입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앞서 현대약품은 2021년 7월 식약처에 미프진에 관한 품목 허가도 신청했으나, 식약처는 입법이 미비하다는 이유를 들어 5년째 심사를 미루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법무부(대검찰청)·성평등가족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문가들은 정부와 국회 모두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몇 년째 임신중지와 관련한 정책 수립이 사실상 멈췄다"며 "국회와 정부 모두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특히 임신 후기의 임신중지 문제와 관련해 "단순히 형사처벌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전문가위원회 판단과 지원 체계를 통해 관리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면서 현재 어떤 경로로 임신중지가 이뤄지고 있는지, 의료 환경은 안전한지 등에 대한 조사와 연구가 거의 없다.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하다못해 시행령을 개정해서 미프진을 도입하는 식으로 적극 움직여야 한다"면서 "입법만 기다릴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여러 가지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정주현 수습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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