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사마Ⅱ(은퇴한 사람들의 해외 마을 만들기)는 단순한 은퇴자 주거 모델이 아닌, 초고령 사회와 기후위기 시대에 국가와 개인이 함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설계하는 새로운 국가 전략입니다. 해외 거점에 형성될 은퇴자 커뮤니티는 항공·관광·헬스케어·부동산 산업을 잇는 신수요를 만들고, 동시에 한국 기업과 스타트업의 교두보가 됩니다. 거점도시는 결국 한국형 개발협력(ODA), 글로벌 공급망 전략, 문화 교류의 실제 인프라가 됩니다. 은사마Ⅱ의 1차 거점은 라오스 비엔티안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두 도시 거주자들의 기고를 통해 이 전략의 향후 전개 방향을 살펴봅니다. 본 기획에서는 한국 기업의 극동 러시아 진출 교두보이자 항만·물류·관광·에너지 산업이 교차하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펼쳐지는 한러·유라시아 교류의 현장을 함께 들여다봅니다. (편집자 주)
7년 전 한국 KBS 방송을 통해 방영된 미국의 세계적인 투자기업가 '짐 로저스'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뛰어난 젊은이들이 공무원 같은 안정적 일자리에 안주하지 말고 변화하는 한반도의 정세에 인생을 걸어볼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의 중국이나 1980년대의 베트남에서 일찌감치 느낀 투자 원칙에 따라, 현시대에서 가장 발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으로 한반도와 북한을 지목했습니다. 그리고 여건이 허락된다면 자신의 전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은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미국이나 서구 세력과의 관계에서 정치와 경제를 철저히 이원화해 국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국가는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러시아인도 한국인도 가장 많이 방문하는 관광지로 변화했습니다.
짐 로저스가 중국이나 베트남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고, 그로 인해 얼마나 수익을 거두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는 일찌감치 아시아 지역으로 주요 투자처를 이동해, 여전히 싱가포르를 기반으로 이들 지역에 대한 투자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저희 블라디보스토크 시민들에게는 두 분의 한국 기업인이 대표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중 한 분은 30여년 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최초로 5성급 호텔을 만들고, 연해주 지역에 대규모 농장 토지를 확보해 한국 기업들의 해외 영농 사업 발판을 구축한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입니다.
정 회장이 작고한 지금은 한국의 롯데그룹으로 경영 주체가 바뀌었지만, 롯데호텔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가장 대표적인 랜드마크 호텔입니다. 또한 롯데상사의 연해주 농장 규모는 3000만평 이상으로 여의도 면적의 30배 이상에 달하는 광활한 공간에서 연간 2만톤 이상의 대두, 옥수수, 귀리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루스키섬 극동연방대 캠퍼스 전경. 러시아 극동 개발 전략의 핵심 교육·연구 거점. (사진=러시아 정부 과학기술 포털)
다른 한 분은 고합그룹의 고 장치혁 회장입니다. 지금의 루스키섬 극동연방대가 설립되기 전인 30여년 전, 100만달러 이상의 수리비를 들여 낡은 국립국동대 사범대학 건물을 전면 보수하고 대학 측에 기증했습니다.
두 분의 공통점은 북한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한반도의 미래 발전 가능성을 러시아 연해주와 극동 지역에서 찾으며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를 실행했다는 점입니다. 아마도 이 시기에 한국 정부가 과감히 추진한 북방정책과 한·러 경협 사업의 실행력이 극동 러시아 지역에 대한 두 회장의 선제적 투자를 결정하게 만든 동력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한·러 경협 사업과 정주영·장치혁 회장 같은 선구적 투자자들의 결정으로부터 이제 3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기간 동안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5~6배 이상 성장했고, 주요 기업들의 매출과 이익 규모 역시 수십에서 백 배 이상 확대됐습니다.
러시아 또한 구 소련 체제에서 변화되는 과정에서 많은 혼란을 겪었지만, 여전히 세계 10위권의 GDP 수준을 유지하며 국제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특히 극동 러시아 지역의 성장 가능성과 전략적 중요성은 계속 부각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북한의 경제 상황은 35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나아지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심지어 미국도 쉽게 다루지 못할 정도로 동북아시아에서 핵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베트남과 같은 경제발전 모델로 체제가 변화된다면, 단기간 내 매우 큰 성장 가능성을 지닌 지역이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지도에서 한반도를 다시 바라보면, 한국은 아시아 대륙의 동쪽 끝에 위치해 있지만 북한과의 단절로 인해 사실상 일본처럼 섬과 유사한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 연해주 하산 지역과 북한 나진 사이에 기존 철로선 확장뿐 아니라 차량 통행을 위한 다리가 새로 건설되고 있으며, 올해 안에 완공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극동 러시아 시민들에게 새로운 흐름의 시작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이제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을 통해 아시아 대륙에서 성장할 수 있는 준비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지난 글에서 언급한 남·북·러 경제협력과 한국 정부의 '9개의 다리(나인 브릿지)' 전략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기고문에서 보았듯이 한반도 발전을 위한 핵심 협력 대상은 극동 러시아이며, 그 중요성은 오랜 역사 속에서 확인되어 왔습니다. 또한 '나인 브릿지' 전략 역시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실행되어야 할 한·러 공동 발전의 핵심 로드맵입니다.
러시아 하산과 북한 나진을 연결하는 북·러 국제열차. (사진=러시아스피봇투아시아)
나진-하산 간 자동차 통행을 위한 다리 건설이 단순히 경계해야 할 사안인지, 아니면 한반도 발전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앞으로의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 변화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의미로 다가올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현재 미국과 유럽의 제재로 인해 9가지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변화를 기다리는 것만이 답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 다음 글에서는 극동 러시아 시민의 입장에서 한국 정부와 국민들에게 드리는 제언을 끝으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이 글을 쓰며 정리했던 생각들을 다시 돌아보겠습니다.
유리 시바첸코 루스퍼시픽그룹 컴퍼니대표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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