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횡단보도 '선 밖 보행자' 사고도 차량 책임"
횡단보도 선 밖 사고도 "통행 과정이면 보행자 보호헤야"
검찰 "횡단보도 보행자 아니야"…헌재 "검찰, 법리 오해"
2026-05-26 14:26:10 2026-05-26 14:48:35
[뉴스토마토 정주현 기자] 횡단보도를 건너던 보행자가 사고 당시 횡단보도 선을 약간 벗어나 있었더라도, 전체적으로 횡단보도를 지나는 과정이었다면 운전자의 사고 책임이 인정된다는 헌법재판소 판단이 나왔습니다. 횡단보도 인근 사고에 대한 운전자의 책임 범위가 한층 넓어질 전망입니다.
 
지난 3월18일 서울 중구 을지로입구역 인근 횡단보도에서 우산을 쓴 시민들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헌재는 지난 21일 교통사고 피해자 A씨가 가해자인 운전자 B씨의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교통사고처리법) 위반 치상 혐의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이 내린 불기소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습니다.
 
앞서 운전자 B씨는 2024년 1월, 서울 서초구의 한 횡단보도 앞 도로에서 승용차를 몰고 우회전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려던 A씨를 들이받았습니다. A씨는 이 사고로 약 6주간 치료가 필요한 늑골 다발성 골절상 등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B씨의 교통사고처리법 위반 치상 혐의에 대해 불기소로 처분했습니다. 블랙박스 영상을 봤더니 A씨가 횡단보도를 벗어난 지점에서 도로를 횡단하다 사고를 당한 겁니다. 검찰은 A씨를 '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로 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반면 A씨는 사고 당시 자신이 횡단보도 안에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설령 사고 지점이 횡단보도 안이 아니었다고 해도,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던 만큼 도로교통법의 '횡단보도를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 해당한다"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헌재는 A씨 주장을 받아들여 B씨가 일시정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2022년 개정된 도로교통법 제27조(보행자의 보호) 1항엔 "모든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거나 통행하려고 하는 때엔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않도록 그 횡단보도 앞에서 일시정지해야 한다"라고 규정했습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 뿐만 아니라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려고 하는 때'에도 운전자에겐 일시정지 의무가 부과된다는 게 헌재 판단입니다. 헌재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의사로 통행하던 중 외부 요인이나 걸음걸이, 관성 등 우연한 사정으로 횡단보도를 약간 벗어난 지점에서 사고가 났더라도, 전체 과정을 보면 횡단보도 통행 과정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헌재의 이번 판단엔 사고 현장의 구조적 특성도 반영됐습니다. 해당 횡단보도는 중앙선과 수직이 아닌 비스듬한 형태로 설치됐고, 건너편에 인도가 아닌 화단으로 구성됐습니다. 보행자가 자연스럽게 '횡단보도 선을 벗어나 직진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헌재는 "보행자가 의도적으로 횡단보도를 벗어날 이유가 없으며, 구조적 특성상 잠시 선을 이탈한 것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헌재는 운전자에게 A씨가 횡단보도를 건널 목적으로 횡단보도 앞에 서서 주위를 살피고 도로에 진입한 때부터 일시정지 의무가 발생했다고 본 겁니다. 그러면서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선 "도로교통법 27조 1항의 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 보호 의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결론을 그르친 검찰권의 행사"라고 지적했습니다.
 
정주현 기자 givehyu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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