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다인 기자] 응급실에서 난동을 부려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임을 소명하며 국선변호인 선임을 요청했는데도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재판을 진행했다면, 유죄 여부와 별개로 판결을 다시 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습니다. 대법원은 기초생활수급자의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를 특별한 이유 없이 기각한 건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한 절차상 위법이라고 본 겁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벌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A씨는 지난해 7월 부산 사하구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종아리 상처를 진료받던 중, 의료진에게 욕설을 하고 벽을 주먹으로 치는 등 응급환자 진료를 방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당시 A씨는 자신의 행동을 제지하던 응급과장에게 "나한테 반말했냐! 개XX 나한테 반말하네!"라고 소리치며 팔꿈치를 잡아당겨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1심은 A씨가 2006년부터 15년간 폭력·음주운전 등을 저지르고도 벌금형으로 선처받아 왔음에도 반성하지 않았다고 지적,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20시간을 명령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준법시민으로 거듭나기는커녕 응급실에서 갖가지로 행패를 부려 촌각을 다투는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를 방해했다"며 "이번에야말로 다시는 국법 질서를 능멸하지 못하도록 버르장머리를 뜯어고쳐야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반면 2심은 1심의 형이 지나치게 무겁다고 보고 징역형 대신 벌금 600만원만 선고했습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행사한 유형력(有形力)의 정도가 비교적 무겁지 아니한 점, 피해자와 합의하여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점" 등을 양형에 반영했습니다.
그런데 A씨의 상고로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은 그가 국선변호인 없이 재판을 진행한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아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A씨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수급권자라는 자료를 제출하며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했는데도, 원심이 이를 기각한 채 변호인 없이 재판을 진행했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형사소송법 제33조(국선변호인)는 '법원은 피고인이 빈곤이나 그 밖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피고인이 청구하면 변호인을 선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피고인은 빈곤으로 인해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는 걸로 인정할 여지가 충분하고 기록상 이와 달리 판단할 만한 사정을 찾아볼 수 없다"며 "사정이 이러하다면 원심으로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국선변호인 선정을 결정해 그 변호인으로 하여금 공판심리에 참여하도록 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와 달리 원심은 피고인의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를 기각한 채 이후의 공판 심리를 진행함으로써 국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효과적인 방어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신다인 기자 shin12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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