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주하 기자] 금융당국이 평균 20년에 달하는 상장사 회계 심사·감리 주기를 대폭 단축하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10년, 코스닥 상장사는 5년 주기로 감리를 실시하고 고의적·중대한 회계부정 기업은 신속히 시장에서 퇴출하는 방안도 검토됩니다. 사후 적발 중심의 감독 체계를 예방 중심으로 전환해 회계 부정을 조기에 차단하고 자본시장 신뢰를 높이겠다는 구상입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회계학회는 24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회계 심사·감리제도 개선 방향에 관한 연구 세미나'를 열고 감리 주기 단축과 조사권 강화, 회계감독 체계 개편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이번 세미나는 현행 상장사 평균 감리 주기가 약 20년에 달해 회계 부정을 예방하고 적발하는 기능이 충분히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마련됐습니다. 해외 주요국과 비교해도 국내 감리 주기가 지나치게 길어 회계 부정 적발의 적시성과 시장 억제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반복되는 회계 부정 사건이 시장 신뢰를 훼손하는 구조적 위협이 되고 있다"며 "회계 부정을 조기에 식별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예방적 감독 체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제도 개선의 실질적 성과를 위해서는 강제 조사 수단 확충 등을 위한 국회의 입법 지원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심사·감리 주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면 회계 부정의 신속한 적발과 조치가 가능해져 투자자 신뢰와 기업의 예측 가능한 성장 환경을 강화할 수 있다"며 "투자자 보호와 회계 투명성 제고를 위한 입법 지원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세미나에서는 감리 주기 단축과 조사권 강화, 신속 상장폐지 제도 도입 등이 주요 개선 과제로 제시됐습니다. 이날 연구 발표를 맡은 박경진 명지대 교수와 오명전 숙명여대 교수는 감리 체계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 상장사 평균 20년 수준인 감리 주기를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10년, 코스닥시장은 5년 수준으로 단축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연구진은 현재 2개인 금감원 내 감리 전담 부서를 4개로 확대하고 전문 인력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오 교수는 현재 금감원의 현장 감리 전담 인력이 32명에 불과해 사실상 상시 감시가 어려운 구조라며 현장 인력 100명과 디지털 포렌식 등 지원 인력을 포함해 최소 150명 수준으로 조직을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조사 권한 확대 필요성도 제기됐습니다. 박 교수는 현행 회계감리가 피조사자의 협조에 의존하는 임의조사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금융실명법 개정을 통한 금융정보 접근권 도입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연구진은 심사 단계에서는 임의조사를 유지하되 정식 감리 단계에서는 일부 강제 조사 수단을 도입해 감리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특히 고의적이거나 중대한 회계 부정이 적발된 기업에 대해서는 신속 상장폐지 제도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습니다. 연구진은 증권선물위원회가 고의성을 인정한 중대 분식회계 기업에 대해서는 개선 기간 없이 상장폐지 절차를 진행하고 감리 결과를 한국거래소의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와 연계해 신속하게 시장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위험 기반 감독 체계 구축 방안도 제안됐습니다. 기업별 회계 위험도를 분석해 위험 수준에 따라 심사 주기를 차등 적용함으로써 감독 효율성을 높이고 한정된 감리 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토론 과정에서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습니다. 전문가들은 감리 주기 단축과 전문 인력 확충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급격한 제도 변화가 기업의 부담과 경영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단계적인 실행 로드맵과 정교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금융정보 접근권은 개인정보 보호와 기본권 침해 우려가 있고, 신속 상장폐지 제도 역시 투자자 피해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충분한 통제 장치와 보완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습니다.
금감원은 이번 세미나에서 제시된 연구 결과와 학계·기업계·회계업계 의견을 바탕으로 금융위원회와 협의해 회계 심사·감리 주기 단축 로드맵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감리 인력 확충과 조사 수단 고도화, AI 기반 위험도별 차등 심사 체계 구축, 상장폐지 연계 방안 등을 포함한 제도 개선안을 순차적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회계 심사·감리제도 개선 방향에 관한 연구 세미나'에서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금융감독원)
김주하 기자 juhaha@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자본시장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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