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뉴스토마토 하주화 기자] 도시가스는 시민이 공급업체를 선택할 권한이 없는 지역 독점 산업입니다. 요금과 공급비용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통제를 받습니다. 고객 서비스센터는 정기 안전점검과 긴급출동 등 시민의 생명과 재산에 직결된 업무를 수행합니다. 그러나 공공성이 큰 현장 업무의 상당 부분은 자회사나 위탁업체 노동자들이 맡고 있습니다. 울산과 경남 양산 지역에 도시가스를 독점 공급하는 경동도시가스가 자회사형 고객서비스센터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면서, 현장 검침원들이 또다시 '외주화'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노동자'가 되기까지 무려 12년이 걸렸는데, 다시 외주화 문제가 불거진 겁니다. <뉴스토마토>는 경동도시가스를 둘러싼 갈등과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은 지 반년 만에 또다시 외주화 앞에 선 검침원들의 사정을 들여다봤습니다. (편집자 주)
15일 울산시청 남문 앞에선 공공운수노조 경동가스지회 조합원들이 고객 서비스센터 지분 매각 중단을 요구하며 릴레이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자리엔 16년 차 도시가스 검침원인 한미경(59)씨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한씨가 처음 검침 업무를 시작했을 당시 그의 신분은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였습니다. 매달 수천 곳의 집을 방문해 가스계량기를 확인하고 회사가 지정한 단말기에 사용량을 입력했으나, 정작 회사와 맺은 계약은 '위·수탁계약'이었습니다. 담당 구역과 검침 시기, 업무 방식 모두 회사의 지시를 따랐지만 법적으로는 고객 서비스센터 직원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그러던 한씨가 처음으로 근로계약서에 서명한 건 올해 1월입니다. 검침원들이 오랜 법적 다툼 끝에 노동자 지위를 인정받고, 마침내 고객 서비스센터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겁니다. 안전점검원과 검침원의 법적 신분이 갈라진 지 12년 만에 거둔 결실이었습니다.
하지만 노동자가 됐다는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근로계약을 맺은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소속된 고객 서비스센터가 외부 아웃소싱업체에 매각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개인사업자라는 굴레를 벗자마자 이번엔 사용자가 바뀔 처지에 놓인 겁니다.
2019년 9월18일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울산시청 정문 앞에서 경동도시가스 여성노동자의 울산시의회 옥상 고공농성 강제진압 규탄과 도시가스-노조-울산시 3자 끝장교섭, 장기농성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앞서 경동도시가스는 지난 2013년까지 안전점검원과 검침원을 별도 센터에 도급하는 방식으로 운영했습니다. 이후 안전점검원은 고객 서비스센터 직원으로 편입됐으나, 검침원은 개인 위·수탁 계약을 맺는 특수고용 형태로 남겨졌습니다. 둘 다 경동도시가스 본사 직원은 아니었지만, 일단 안전점검원만 고객서비스센터 소속 노동자 신분을 얻었고, 검침원은 법적인 근로자 지위조차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한씨는 "개인사업자로 남겨진 검침원들은 별도의 영업을 할 수도 없었고 회사가 지급한 근무복과 명찰을 착용한 채 지정된 기기와 업무지침에 따라 일했다"라면서 "그 오랜 세월 왜 내가 노동자가 아닌지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한씨를 포함한 노조는 2021년 고객 서비스센터 법인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회사 측은 검침원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에 따른 근로자가 아니라며 교섭을 거부했습니다.
반면 2023년 울산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서울행정법원 등은 모두 검침원을 노동조합법의 노동자로 인정했습니다. 2025년 6월엔 대법원까지 간 끝에 연차 지급 및 노동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도 승소했습니다. 법원 판결에 따라 검침원들은 드디어 올해 1월 근로계약까지 체결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올해 중순부터 경동도시가스 측이 센터를 부산지역 업체에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겁니다. 한씨는 "울산과 경남 양산 등엔 모두 5개 고객 서비스센터가 있다. 전체 인력은 안전점검원과 검침원, 행정직 등을 합쳐 200명 안팎"이라며 "이 가운데 1곳은 이미 6년 전 매각돼 별도 법인이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매각 대상자는 150명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한씨와 동료들은 매각 이후 발생할지 모를 임금·복지 축소, 인력 감축, 센터 통폐합, 그리고 재하도급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한계에 다다른 노동강도가 더욱 나빠져 결국 부실 점검이나 안전사고로 이어질 것도 염려합니다.
한씨는 "그간 자연 퇴사자가 발생해도 신규 충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 검침원 1명이 담당하는 가구가 한 달 최대 1만가구까지 늘어난 상태"라고 했습니다.
15일 경동도시가스 검침원인 한미경씨가 12년 만에 노동자 신분을 얻었는데 6개월 만에 다시 외주화의 벽에 갇히게 된 사연을 토로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검침원들은 좁은 골목과 계단, 주택 외벽 등을 오가며 정해진 기간 안에 수천 개의 계량기를 확인해야 합니다. 부재 중인 가구는 다시 방문해야 하는 만큼 이동량이 많아 낙상과 교통사고 위험도 커집니다.
한씨는 인력 부족과 업무 과부하가 부실 점검으로도 이어진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지난 2024년 울산 중구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사망 사고가 있었는데, 도시가스 부실 점검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직원들의 판단"이라고 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선 9기 울산시장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10일 경동도시가스와 경동가스지회, 시민사회단체, 울산시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토론회까지 열었습니다. 하지만 매각 중단이나 고용 승계 및 안전 대책을 둘러싼 합의를 끌어내지는 못했습니다.
한편, <뉴스토마토>는 경동도시가스 측은 제기된 문제에 대한 입장과 반론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노동자들의 우려와 본지의 문제 제기에 관해 공식적 입장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비공식적 경로로는 고객 서비스센터 법인이 존속한 채 주주만 바뀌는 구조여서 고용관계도 유지되고 복리후생도 지켜진다는 입장만 전달해 왔습니다.
울산=하주화 기자 jh@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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