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유례없는 극한 폭염에 연밭의 연꽃들도 일찍 시들어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연밭 속에서도 생명의 숨소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반짝이는 푸른빛으로 물가를 수놓는 새, 바로 '물총새'입니다. 산속 개울가나 들판의 호숫가를 한가로이 거닐다 보면, 물가 나뭇가지나 바위 위에 조용히 앉아 수면을 가만히 지켜보는 작은 새를 만날 때가 있죠. 몸길이 약 17cm 정도로 참새보다 조금 큰 편이지만, 화려한 자태만큼은 그 어떤 아름다운 조류에도 뒤지지 않습니다.
사냥에 지친 물총새 수컷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머리와 어깨, 날개는 광택 나는 짙은 초록색, 등에서 허리까지는 눈이 부신 밝은 하늘색, 그리고 가슴과 배는 따뜻하고 선명한 주황색을 띠고 있지요. 부리 밑과 목뒤의 순백색 깃털까지 어우러지면 마치 물가에 피어난 한 송이 화려한 꽃이나 보석 같다는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재미있는 건 암수 구별법인데요. 수컷은 위아래 부리가 모두 검은색이지만, 암컷은 아래 부리가 붉은빛(마치 립스틱을 살포시 바른 듯한 모습)을 띤다는 점입니다.
물총새 하면 역시 '물고기 사냥의 귀재'라는 수식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나뭇가지나 바위 위에 정지 자세로 조용히 앉아 숨을 죽이고 있다가, 물고기가 수면 가까이 부상하는 순간 번개처럼 다이빙을 시도합니다. 날카롭고 긴 부리로 물고기를 낚아채는 그 정교하고 민첩한 기술은 물고기를 사냥하는 새 가운데 단연 가장 박력 있고 멋진 모습입니다. 사냥할 때 수면에 반사되는 빛의 굴절까지 정확하게 계산해 목표물을 타격하고, 사냥한 물고기는 바위에 쳐서 기절시킨 뒤 머리부터 깔끔하게 삼키는 지혜로움도 보여줍니다. 이 정교하고 뛰어난 사냥 기술 덕분에 물총새는 '커먼 킹피셔'(Common Kingfisher), 즉 물고기를 낚는 왕이라는 멋진 영어 이름도 얻게 됐지요.
물총새의 이 환상적인 모습은 역사와 문화 속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겨왔습니다. 우리나라 문인화나 민화 속에서 앙증맞은 연밭의 작은 새로 자주 등장하곤 합니다. 중국에서도 물총새의 아름다운 깃털은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한자로 물총새를 '비취'(翡翠)라 불렀는데요. 수컷을 뜻하는 '비'(翡)와 암컷을 뜻하는 '취'(翠)가 합쳐진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고급 보석으로 잘 알고 있는 푸른빛의 비취(옥)라는 이름 역시 바로 이 물총새의 오묘한 깃털 색에서 유래한 것이죠. 옛 궁중이나 명망 높은 가문 여인들의 장신구 중 하나인 '점취관'이나 머리핀에도 물총새의 진짜 깃털을 섬세하게 붙여 장식했을 만큼, 물총새의 푸른빛은 예로부터 최고의 미를 상징하는 귀한 존재였습니다.
물총새 암컷이 경기도 고양시 한 비단잉어 양식장에서 비단잉어 치어를 사냥해 연꽃대에 앉아 있다.
물총새는 우리나라에 4월 중순쯤 찾아와 6~7월에 하천가의 흙벼랑에 긴 구멍을 파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우는 대표적인 여름철새입니다. 정성껏 새끼를 키우며 번식기를 보낸 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는 11월이 되면 따뜻한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먼 이동을 떠납니다. 물론 일부 개체는 우리나라 남부지방의 얼지 않는 따뜻한 물가에 남아 겨울을 보내기도 하죠. 한국을 비롯해 러시아, 중국, 몽골, 일본 등 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맑은 물가에 폭넓게 살아가는 유랑꾼인 셈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요즘 이 아름다운 새를 만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강과 호수가 오염되고, 하천 직강화 공사나 콘크리트 제방 공사 등으로 물총새가 둥지를 틀 흙벼랑과 습지가 사라지면서 이들의 터전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총새가 즐겨 먹는 작은 물고기나 양서류, 수서곤충이 줄어든다는 것은, 곧 그 물가가 병들어가고 있다는 생태계의 확실한 신호입니다. 실개천 먹이사슬의 상위 포식자인 물총새가 사라진 습지나 호수는 먹이사슬이 단절된 오염된 장소와 다름없지요.
물총새가 하나둘 우리 곁을 떠나가는 현상은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환경이 그만큼 악화하고 있다는 간곡한 경고입니다. 푸른 보석처럼 반짝이는 물총새가 언제까지나 우리 강변을 힘차게 날아다닐 수 있도록, 이제는 우리가 이들의 맑은 물가와 터전을 지켜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글·사진=김연수 생태칼럼니스트 wildik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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