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던 2008년 이후 시장에 천문학적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한 곳이 미국 연방준비제도 이사회였다면 올해 글로벌 유동성을 주도하고 있는 곳은 유럽중앙은행(ECB)이다.
ECB는 지난해 말 523개 은행에 약 4890억 유로(737조원)을 1% 저금리로 빌려준 데 이어 지난달 5295억유로 (800조원)를 은행들에게 뿌렸다. 여기에 영란은행은 500억 파운드(88조원)를 시장에 풀었고 일본 중앙은행도 10조엔(150조원)의 양적완화를 발표했다. 이 같은 중앙은행들의 양적완화로 올 들어 시장에 풀린 돈은 20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장전문가들은 기존의 유동성에 이어 미 연준이 오는 2014년까지 제로금리를 연장하는 통화정책을 고수하고 있고, 경기 둔화시 언제라도 QE3 카드를 꺼낼 준비가 되어 있어 유동성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 돈의 힘으로 수익률 게임..부작용 '우려'
유동성 공급으로 중앙은행이 기대하는 것은 금융시장의 신용경색 완화와 기업의 투자 확대, 소비 회복 등이다. 그러나 정작 유럽 은행들은 저금리로 조달한 유로자금을 신흥국 주식이나 상품 자산 등 위험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거두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어찌됐든 시중에 풀린 돈은 전세계 주요 지수를 9% 가까이 올렸고, 특히 우리나라를 비롯해 신흥국의 지수는 14%이상 상승했다. 원유시장에서 두바이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배럴당 120달러, 107달러를 각각 웃돌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유가 급등은 이란 등 지정학적 요인도 있지만 과잉 유동성이 몰린 영향도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유가는 2008년에도 투기 수요가 몰려 WTI가 배럴당 145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가를 찍었고 당시 유가가 200달러를 돌파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었다. 하지만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이 끝나고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금융기관의 유동성은 쪼그라들었고 국제유가는 배럴당 33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유동성이 실물경제에 공급되지 않고 특정 자산으로 쏠림이 심화되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는 "펀더멘털이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동성만으로 자산가격이 오르면 경기가 회복되는 것처럼 착각할 수 있다"며 "과잉 유동성은 부작용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 올 들어 유입된 유럽계 자금 중 70% 단기자금
국내 금융시장에서도 단기 유동성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올해 유입된 외국계 자금 중 상당수가 언제든 빠져나갈 수 있는 단기 트레이드 자금이라는 지적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국내 주식시장으로 들어온 유럽계 자금 5조5000억원 중 60~70%는 보유한 주식을 1년에 5차례 이상 매매하는 단기 자금이라고 진단했다. 돌발 악재라도 터질 경우 최대 3조8000억원 규모의 자금이 일시에 주식시장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들은 주식시장에 변동 사항을 알리지 않아도 되는 5%미만의 지분을 매매하는 거래를 주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 관계자는 "자금을 확보한 유럽 은행들이 최근 신흥국에 관심을 두고는 있지만 유럽발 악재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은 부담이다"며 "위기시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장기보다 단기간내 수익을 내려는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다만,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갈 경우 주가가 하락하고 환율이 급등하는 등 금융시장이 요동을 칠 수 있어 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