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윤성수기자]
SK(003600)그룹 최태원 회장 형제의 회사자금 횡령 혐의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간 법정 공방이 3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기소 이후 15차례 넘게 열린 재판은 주요 증인들의 거듭된 진술번복과 자금에 얽힌 증인 간 엇갈린 증언, 검찰과 변호인단간 신경전 등이 연출되면서 미궁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주요 증인들의 신문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고, 재판도 어느덧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이르면 내달 말쯤 결과를 가늠할 수 있을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원범)는 지난주에 이어 24일에도 잇달아 재판을 열고 증인 신문과 중요 증거의 감정을 실시했다.
이 사건의 쟁점은 베넥스인베스트먼트(베넥스)의 펀드조성 절차의 적법성과 출자자금에 대한 최태원 회장 등의 횡령의 고의성, 저축은행 대출금 횡령에 최 회장이 개입되었는지 여부 등이다.
검찰은 최 회장 등의 이같은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베넥스와 SK그룹 재무담당자들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오락가락한 '베넥스 관계자'..변호인측 역공
"검찰 조사에서 '네.네.'대답만 했던데, 생각해보니 추측만으로 대답한 것 맞지요?"
"네."
수백억원의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최 회장을 둘러싸고 검찰 측이 내세운 증인들의 진술이 거듭 번복됐다.
이날 검찰은 최 부회장이 비상장사인 아이에프글로벌(IFG) 주식 6593주를 액면가보다 부풀려 베넥스 펀드에 매각해 재산상 이익을 취한 혐의를 확인하기 위해 베넥스 투자전략실 이사인 김모씨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오전 공판에서 김씨는 "김준홍 베넥스 대표의 지시로 IFG 매수를 시작했다. 최 부회장과 관련된 일이라 생각했다"고 밝혔지만, 오후 들어 "당시 검찰의 심한 추궁과 압박 때문에 (그렇게) 진술한 것으로 검찰 진술이 사실과 다르다"고 번복했다.
증인들의 진술 번복은 이 뿐만이 아니다.
서씨는 검찰수사과정에서 "최 회장이 지시했는지는 잘 모른다"고 밝혔으나, 이날 법정에서는 "지난 2008년 10월29일 첫 선지급금이 들어오기 전(10월27일) 최 회장의 선지급에 대한 컨펌(지시)이 있었다"고 기존 진술을 뒤집었다.
이에 변호인측은 "최 회장이 펀드 투자금으로 500억원을 만들라고 지시했다고 들었냐"며 묻자 "듣지 못했다"고 바로 말을 바꿨다. 또 "펀드 자금을 사용해 500억원을 보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들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아니다"라며 말을 바꿨다.
또 검찰은 지난 4월11~12일 이틀간의 공판과정에서 "최 회장이 투자자금 조성을 위해 SK계열사 자산을 담보로 저축은행으로부터 수백억원대의 대출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이 과정에서 최 부회장 등 3자 명의로 자금을 대출받았지만 최 회장이 보증을 선 만큼 실제 차주는 최 회장 아니냐"라며 베넥스 경영지원실장 황씨를 추궁했다.
이에 대해 황씨는 "김 대표의 지시에 따라 2008년 12월 하순쯤 최 부회장 등의 명의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최 회장이 보증인으로 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최 회장과 관련된 대출이라고 생각했다"고 진술했으나 "최 회장이 실제 차주냐"는 검찰의 질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라며 명확한 진술을 피했다.
이처럼 증인들의 진술번복이 계속되자 변호인측은 검찰이 내세운 증인 진술의 신빙성에 대해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다.
◇SK재무팀장 "T명폴더, 검토용인데 오해가 있어 답답"
검찰이 반격용으로 꺼내든 압수수색 당시 '외장하드' 내 'T명폴더' 문서들을 놓고도 검찰과 변호인간 치열한 공방이 이뤄졌다.
검찰에 따르면 이 문서들은 최 회장 지시로 SK그룹 재무팀장 박씨가 SK계열사들이 선입금한 베넥스펀드 투자금을 김원홍씨 계좌로 송금하는 과정을 적어놓은 문건이다.
이는 검찰이 최 회장이 직접 SK계열사에 베넥스 펀드 투자를 지시, 회사 자금을 유용토록 지시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하지만, 해당 문건을 작성한 박씨는 "혼자 검토한 문서"라며 '최 회장의 지시'라는 검찰측 주장을 반박했다.
박씨는 "펀드 자금을 관리하던 베넥스가 불·탈법적으로 운영이 된다면 최 회장까지 위험해 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그런 상황을 대비해) 혼자 검토하다 중간에 그만 둔 것인데 수사의 결정적 증거라는 오해가 생겨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에 변호인측도 "검찰이 제시한 문건은 형식조차 갖춰지지 않은 검토용 자료일 뿐, 실제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최 회장의 '혐의 없음'이 입증되는 자료"라고 주장했다.
또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문건 작성 시기가 SK계열사들의 펀드 선입금 출자 시기보다 늦은 점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회장에 대한 보고 문건으로 보기엔 문장의 완결성이 부족하고 선지급에 대한 단어도 없는 점을 내세우며 최 회장의 무죄를 역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도관이론' 최 회장 절세효과 때문?
'T명폴더' 내 문건에는 'T(최태원)' 소유의 2500억원 가량이 'J(최재원)'의 계좌를 거쳐 'W(김원홍·최 회장 선물투자담당)'의 계좌로 넘어가는 과정이 도표로 그려져 있다.
문건에는 'J는 도관의 역할'이라고 명시돼 있다. 국세청 요구자료를 기준으로 작성한 다음 문건 역시 최 부회장이 '도관'이라고 적혀있다.
검찰은 이 문건을 토대로 2008년 말 SK 계열사들이 펀드투자금으로 베넥스에 보낸 돈이 김씨에게 넘어간 공소사실 역시 '최 부회장이 잠시 빌려 쓴 것'이라는 SK 측 주장과 달리 최 회장의 직접적인 지시 아래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변호인측은 "사실조사를 통해 작성된 문건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도관이론'을 택한 것일 뿐, 실제로는 최 회장과 관련이 없는 자금이라는 것이다.
SK 재무팀 소속 증인들도 문건 작성경위를 묻는 변호인의 질문에 "자금이 두 다리를 건너면 한 번 건너가는 것보다 세금이 많아지기 때문에 이를 줄이기 위해서 '도관이론'을 택해 세무조사에 대비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빠짐없이 출석한 최태원 형제..결심공판, 6월말 예상
지난 3월2일 첫 공판 이후부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주일에 두 차례씩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출근한다. 이처럼 빡빡하게(?) 공판 일정이 잡힌 것은 피고인 최 부회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최 부회장의 구속 만기일은 7월 초로 잡혀 있다. 통상적으로 피고인이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이 진행되면 결심공판의 기한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구속상태라면 구속만료 이전에 재판을 끝내야 한다.
필요에 따라 재판부는 야간개정을 통해 공판일정을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중에 있다. 결심공판은 방대한 증거자료와 증인신문 연장 등으로 당초 일정보다 한 달 이상 늦춰져 이르면 내달 말쯤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에서 내세운 증인신문이 마무리되고 있지만, 이후 SK 변호인측의 증인 신문이 진행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판에서 눈에 띄는 점은 SK그룹 홍보팀 관계자들이 대거 방청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십명 규모의 SK 관계자들이 방청석을 점령하면서, 재판장이 법정을 소법정에서 형사대법정으로 바꿨다.
최 회장 형제에 대한 다음 공판은 오는 29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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