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의 낙마 가능성에 '사법사상 초유'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호들갑을 떠는 모습을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물론 대법관 후보자가 낙마한 사례는 없다. 그러니 '사법사상 초유'라는 표현이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슨 대단한 난리가 난 것처럼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세 가지 이유를 들겠다.
먼저, 이미 우리는 민주통합당이 추천했던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1년 1개월이나 임명동의를 받지 못하다가 결국 스스로 자리를 포기해야 했던 기억을 갖고 있다.
아니 기억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현재진행형이다. 헌법재판소는 여전히 8명의 재판관이 재판을 하고 있다.
그러니 대법관 한 명이 제 때 임명되지 못한다하여 무슨 대수로운 일인가? 안 그런가?
헌법재판관 공석 사태를 1년이나 넘게 방치했던 집권 다수 여당 새누리당이 대법원에 대법관 한 명 모자란다고 엄청난 사태가 일어날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그야말로 '오버'다.
더구나 임명동의를 거부한 사유가 무슨 도덕성에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고, '명백한 진실에 대한 합리적 의심'이라는 지식인의 자세 때문이다.
대법관 한 명이 공석이 되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사태라면 헌법재판소 재판관 한 명이 1년1개월이 지나도록 공석인 상태는 어떻게 봐야 하는걸까? 이것이야말로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로 부를만하지 않은가?
둘째, '고작' 대법관 후보자 낙마에 호들갑 떨지마라. 대한민국은 이미 대법원장 후보자도 낙마시킨 사례가 있다. 그래서 '고작'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1988년 6월15일 김종훈, 유남석, 이광범, 한기택 판사 등 소장판사 335명이 '새로운 대법원 구성에 즈음한 우리들의 견해'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름하여 '2차 사법파동'이 일어났다.
87년 6월항쟁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의해 6·29선언이 발표되는 등 대한민국에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때였다.
소장판사들은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의 5공에 의해 대법원장에 오른 김용철 대법원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결국 김 대법원장은 성명서 발표 닷새 후인 6월20일 사퇴했다.
그러자 노태우는 후임 대법원장 후보에 정기승을 임명했다. 그러나 여소야대의 국회는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결국 이일규 대법원장이 임명되면서 사법파동은 마무리됐다.
그러니 '고작' 대법관 후보 낙마를 갖고 대단한 사태가 벌어진 것인냥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대법원장도 낙마했던 마당에 대법관 한 명 낙마한다고 무슨 대단한 일인가? 빈자리는 납득할 수 있는 후보자로 다시 채우면 그만이다.
셋째, 김병화 후보자가 대법관이 된다면 누가 그 재판에 승복하겠는가? 현재는 국회의원들 자유투표로 선회했지만 새누리당은 "치명적인 부적격 사유가 없다"는 납득할 수 없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 후보자에게 제기된 의혹은, 일반인이었다면 이미 검찰이 신상을 탈탈 털어서 무슨 죄로든 사법처리했을지도 모른다.
현 정부 이전의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위장전입만으로도 국무총리에서 낙마하고, 대법관 후보로는 임명제청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도덕성 기준이 낮아지기 시작하더니 위장전입은 아예 필수과목이 된냥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불감증마저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대법관이 진행하는 재판을 받은 당사자들이 대체 어떻게 판결결과에 승복할 수 있을 것인가? 과연 누가 누구를 심판한단 말인가? 김병화 후보자는 심판자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없다.
지금이라도 김병화 후보 스스로 사퇴하던가, 아니면 연일 '쇄신'을 입에 올리는 새누리당의 주도로 국회가 임명동의안을 부결시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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