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정부가 고가의 가방에 개별소비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자 여론의 관심이 뜨겁다. 이른바 명품으로 불리는 고가가방을 선호하던 여성들에게는 기분나쁜 소식일테고, 명품가방을 부러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서민들에게는 배아픔을 조금이나마 해소해 줄 수 있는 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세금이라는 것을 누구에게는 기분나쁨을, 누구에게는 배아픔 해소를 주기 위해 만드는 것은 아니다. 고가가방 세금의 숨은 모습을 보자니 이런 국민들의 엇갈린 희비는 다 부질 없어 보인다.
지난 4년간 감세, 감세, 감세를 외쳤고, 올해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제도를 폐지하는 등 집부자들의 세금을 파격적으로 깎아주겠다는 정부가 유독 비싼 가방에만 세금을 더 걷겠다는 의미가 무엇일까.
바로 '상징성'이다.
정부가 세법개정안을 마련하면서 가진 당정협의에서 새누리당에서는 '좋은 방안'이라며 가방세를 다른 물품으로 확대하자는 의견까지 냈다.
집권 내내 부자정당 이미지에 휘둘렸는데 대선을 코앞에 두고 뒤늦게 증세를 외치는 새누리당 입장에서도 당연히 환영할만한 방안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관심끌기는 일단 성공한 모습이다. 있는 사람들은 내일 살 가방값이 오를 까봐, 없는 사람들은 사지도 못할 가방이지만 '이건 또 뭔 세금인가' 하고 놀라 두리번 거리며, 그나마 살 꿈도 멀어지는구나 한탄한다.
기자도 이른바 명품가방과 그것에 중독되거나 열망하는 사람을 썩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세금이 이른바 '된장녀'와 '된장남'을 사라지게 하거나 대한민국 상당수 국민들의 '명품병'을 고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단순히 부자세금이라는 색깔을 더하기 위해 사용된 '물감'에 불과한 데다 걷기 편한 세금만 걷는다는 과세당국의 과세편의주의적인 발상까지 더해진 억지스런 세금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들어진 '가방세'는 1784년부터 약 30여년간 영국에서 존재했던 '모자세'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당시 영국 내각은 부자들에게 손쉽게 세금을 걷기 위해 고민하다 부자들이 많이 소유하고 있는 모자에 세금을 부과했다. 모자는 영국신사의 격식과 예의의 수단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한두개의 싼 모자만 소유하고 있는 반면, 부자들은 비싼 모자를 수집하듯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 밖에도 당시 유럽에서는 창문이 많으면 부자라며 창문세도 부과했고, 벽지세, 장갑세, 향수세 등 다양한 세금을 개발해 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일이지만 정부가 개발한 가방세 역시 훗날 비웃음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아니 이미 비웃음을 사고 있다.
정부는 세법개정안 발표에서 공평과세를 운운하면서도 비싼 가방에는 과세할 수 있고, 비싼 의류에 대해서는 과세가 어렵다고 했다. 의류는 아랫도리와 윗도리를 분리해 판매할수 있어 과세가 애매하다고 설명했다. 정부 논리대로면 가방도 손잡이와 주머니를 분리해서 판매하는 세금회피 신제품이 곧 탄생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5000만명의 세금부담을 좌우하는 기획재정부 세제실 엘리트들이 이런 수준의 세금을 만들어 낸다면 조세정책의 선진화는 요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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