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사
사랑하는 검찰가족 여러분!
검찰은 지금, 성난 민심의 바다에서 격랑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저는 그 바다에 떠 있는 함선(艦船)의 선장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400년 전 백의종군을 끝내고 전장으로 돌아온 충무공의 비장한 심경을 생각해 봅니다.
이 순간 저는 공(公)의 심경에 감히 제 자신을 비추어 보며 무거운 책임감과 막중한 사명감을 느낍니다.
지난해부터 우리는 크고 작은 비리와 추문, 정치적 중립성 논란으로 국민적 공분과 비난의 파도를 맞아 표류하고 있습니다.
명예와 긍지의 상징이었던 검찰의 위상이 크게 실추되고, 어렵게 쌓아온 명성도 급속히 무너졌습니다.
다행히 지난 몇 달간 김진태 전(前) 검찰총장 직무대행님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다소간의 안정을 찾았지만, 정상적인 항해는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위기는 몇몇 사건의 잘못된 처리나 일부 구성원의 일탈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그릇된 관행과 의식과 조직문화가 총체적으로 결합되고 누적되어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제 검찰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에 대한 철저하고도 냉철한 자기성찰을 바탕으로 근본적인 혁신을 하는 것만이 이 위기를 넘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검찰총장으로서 새 출발을 다짐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자성과 혁신부터 강조하는 것은 오욕의 시대에 반드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각오를 여러분과 함께 다지기 위해서입니다.
검찰가족 여러분!
우리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차갑게 식었지만, 우리는 이대로 좌절할 수 없고, 좌절해서도 안 됩니다.
하루빨리 국민의 믿음을 되찾아 지체없이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의 믿음을 회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본연의 임무를 빈틈없이 해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직한 법질서의 수호자, 추상같은 사정의 중추, 든든한 인권의 보루로서 내 이웃과 공동체의 평온하고 안전한 삶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신뢰회복의 길입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부패지수가 여전히 높고 국가투명성이 선진국 수준에 크게 미흡한 현실에서, 강력한 부패척결 활동이 절실하게 요구됩니다.
사회 곳곳에 만연된 부정과 비리를 단죄하는 데 어떠한 성역도, 어떠한 망설임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 국민이 지지하는 방향으로 특별수사체제를 재편하되, 부패수사의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면밀한 설계도를 그려야 합니다.
앞으로 특별수사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을 높이고, '과잉수사'나 '투망식 수사' 등의 비판에서 벗어나야 하겠습니다.
권력형 부정부패, 시장질서를 왜곡하는 기업범죄와 자본시장 교란사범, 국가경쟁력을 침해하는 기술유출범죄 등 검찰만이 할 수 있는 분야에 수사력을 집중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질서와 자유민주체제를 굳건히 수호하고, 공동체의 안녕과 질서를 위협하는 불법과 폭력을 추방하는 것 역시 검찰의 중요한 사명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의 삶과 맞닿은 일반 형사사건에서 신속한 권리구제와 종국적인 분쟁해결에 노력하고, 성폭력을 비롯한 강력범죄를 엄중히 처벌하여 범죄자들의 재범 유혹을 근절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수사의 효율성과 성과가 중요하다 해도 인권보호에 소홀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과거에 비해 물리적인 인권침해는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수사상황 유출로 인한 사건관계인의 명예와 사생활 침해는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는 여론에 의한 '인격살인'을 초래할 수 있는 중대한 범죄임을 분명하게 인식하여, 이를 철저히 예방하여야 합니다.
사법경찰에 대한 수사지휘는 인권보호기관인 검찰의 본질적 기능인만큼 한 치의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행중인 개정 형사소송법과 수사지휘에 관한 대통령령이 실무에 안정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검찰가족 여러분!
검찰이 이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체질과 문화를 혁신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검찰개혁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고, 국민들이 검찰에 바라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임기 중에 '국민이 원하는 검찰'을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민들께도 약속드렸습니다.
'국민이 원하는 검찰'이 되기 위해서는 '원칙과 기본'을 핵심가치로 삼고,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이를 충실히 지켜야 합니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해결에 필요한 답은 언제나 원칙과 기본에 있으며, 이를 저버리고는 답을 찾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매순간 각자의 처신과 업무처리가 원칙과 기본에 부합하는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검찰가족 여러분!
'원칙과 기본'을 확고하게 지키기 위해 이제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준사법작용인 검찰업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공정성임을 반드시 명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정성은 어떤 경우에도 포기할 수 없고 양보해서도 안 되는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해야 할 일은 반드시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는 자세로 오직 실체적 진실만을 추구해야 합니다.
특히,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는 어떠한 의구심도 생기지 않도록 결연한 의지를 가져야 합니다.
저는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인사시스템을 구축하여 바르고 공정하게 일한 검사와 수사관이 반드시 우대받도록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외부의 압력과 유혹도 검찰총장인 제가 방파제가 되어 모두 막아내겠습니다.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더욱 철저히 해소하기 위해 검찰시민위원회의 심의대상을 확대하고, 위원회 구성의 객관성을 높여 검찰의 권한남용을 통제할 것입니다.
아울러 검찰시민위원회 안에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위원회를 설치하여 보다 깊이 있는 심의와 실효성 있는 의견제시가 가능하도록 하겠습니다.
둘째, 청렴한 생활과 깨끗한 처신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깨끗하지 못한 칼이 정의의 도구가 될 수 없듯이 청렴하지 못한 자는 국민이 납득하는 정의로운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검찰인의 처신은 어떠한 경우에도 보편적인 윤리기준과 국민의 눈높이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수백년 동안 일구어온 산림을 잿더미로 만드는 산불도 작은 불씨에서 시작됩니다.
조직 전체를 치명적인 위기로 몰아갈 수 있는 검찰구성원의 작은 실수까지 살필 수 있도록 감찰기구를 확대하고, 외부 감찰인력도 확충하여 감찰역량을 획기적으로 강화할 것입니다.
셋째,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자세를 생활화해야 합니다.
권위는 위계가 아닌 소통에 의해 형성되고, 성과는 명령보다는 책임의식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의사결정 과정에서 하의상달(下意上達)의 민주적 의견수렴 관행을 정착시켜 나가고 부서간, 동료간의 수평적 교류도 활성화해야 합니다.
그동안 권위적, 획일적이던 업무방식과 문화를 혁신하여 건강한 소통에 익숙해진다면 '자율과 책임'이라는 새로운 검찰문화가 자리 잡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저 자신부터 검찰총장의 권한을 일선에 대폭 위임하되, 결과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국민 앞에서 언제나 겸허한 마음가짐을 가져줄 것을 당부합니다.
많은 국민이 검찰의 위기는 오만함과 군림하는 태도에서 왔다고 지적합니다.
우리의 업무는 주권자인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것임을 마음에 새기고, 모든 일을 '권한의 행사'가 아닌 '책무의 수행'이라는 인식하에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건 하나하나를 당사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서민과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아픈 사정을 배려하고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저는 검찰개혁이 결코 '검찰을 위한 개혁'이 되거나 '검찰에 의한 개혁'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개혁작업을 국민과 함께 하기 위해 각계각층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검찰개혁위원회」를 구성하고자 합니다.
「검찰개혁위원회」에서 개혁의 방향과 내용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도록 위원 구성에 객관성을 기하고, 수렴된 의견은 검찰의 제도와 업무수행에 철저하게 반영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검찰가족 여러분!
지혜로운 여행자는 별빛 없는 사막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용기 있는 뱃사람들은 폭풍우 속에서도 흩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친다면 어떤 위기도 거뜬히 극복할 수 있고, 어떤 시련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최고의 리더는 최고의 팔로어"(The best leader is the best follower)라는 말처럼 저 자신 가장 낮은 곳, 가장 험한 곳에서 솔선수범할 것입니다.
이제 다시 충무공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백의종군 후 첫 전투인 명량해전 하루 전날, 공(公)께서 휘하 장수들에게 이르기를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능히 천 명을 두렵게 할 수 있다.(一夫當逕 足懼千夫)"고 하셨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새로운 항해를 앞둔 지금, 넘치는 열정과 지혜로 각자의 위치를 빈틈없이 지켜줄 1만 명의 검찰가족이 있기에 저는 더없이 든든합니다.
여러분이 저를 믿고 따라준다면, 우리는 반드시 검찰을 바로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비상한 각오와 굳건한 자신감으로 일치단결하여 ‘국민이 원하는 검찰’을 만들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2013年 4月 4日
검찰총장 蔡 東 旭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