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수현기자] 국가정보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절차적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침묵이 계속되고 있어 우려스럽다.
그간 국민과의 소통에 인색했던 박 대통령의 스타일을 감안하더라도, 사상 초유의 사건으로 기록될 국정원의 국기문란 행위에 대해서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는 절차적 정의의 개념을 수반하고 있다. 어떤 선거의 결과가 인정을 받을 수 있으려면 그것을 실시한 과정에서 절차의 공정성이 담보돼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이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과 겨뤘던 문재인 민주당 의원의 낙선을 꾀하기 위해 조직적인 활동을 전개한 것으로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
심지어 경찰은 이같은 사실을 인지하고서도 대선을 사흘 앞두고 "댓글을 단 흔적이 없다"는 중간수사결과를 기습적으로 심야에 발표해 선거에 영향을 줬음이 자명한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은 박 대통령 캠프가 사전에 경찰과 공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는 모습이지만, 이런 의혹은 제쳐두고 확인된 사실만 보더라도 박 대통령이 입장을 표명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하다.
박 대통령이 국정원에 국기문란 행위를 지시한 바 없고, 경찰의 거짓 브리핑을 종용하지 않았더라도 처참히 무너진 절차적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최소한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약속을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후속적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절차적 정의가 신뢰받지 못할 경우, 박근혜 정부 하에서 여러 선거들을 치를 국민들이 어떻게 안심하고 자신의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겠는가.
국정원과 경찰이 대선 결과에 영향을 주기 위해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지름으로 인해 최대의 '수혜'를 입은 박 대통령은 훼손된 민주주의를 복원할 '염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대선 결과에 박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박근혜 캠프가 경찰의 거짓 브리핑과 연관되지 않았다면, 박 대통령의 책임은 땅에 떨어진 절차적 정의의 재확립 및 재발 방지 약속에 국한되는 범주라 하겠다.
그렇지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폐지했던 국정원장과의 독대를 부활시킨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을 사전에 알았을 개연성이 높은 만큼, 정권을 재창출한 박 대통령은 적어도 "나는 MB와 당적이 같지만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천명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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