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기성·곽보연기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1일(현지시간)로 예정됐던 삼성전자의 애플 특허 침해 여부와 그에 따른 미국 수입금지 조치 등에 관한 최종판결을 오는 9일로 연기했다. 2년 넘게 끌어온 특허전이 이제 일주일여 뒤면 판가름 나게 됐다.
양사의 특허전은 지난 2011년 4월15일 애플이 미국 산호세 법원에 “삼성이 우리 디자인을 베꼈다”며 제소하면서 불이 붙었다. 삼성은 일주일 뒤인 21일 한국과 독일, 일본 법원에 자사의 통신특허가 침해됐다며 애플을 법정으로 불러들인다. 예상치 못한 즉각적인 응수였다.
이후 특허전은 이탈리아,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호주 등으로 옮겨 붙었다. 전 세계 9개국에서 30여건의 소송이 동시에 진행됐다. 소송비용만 4억달러, 우리 돈으로 4500억원에 이르는 세기의 특허전이 발발한 것이다.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특허에 관대한 유럽을 중심으로 싸움이 전개된 것은 삼성의 보이지 않는 전략으로 평가된다.
◇특허전 전개 2년 만에..삼성, 애플 제치고 시장 1위
특허전이 전개되면서 시장은 급변했다. 기술력, 디자인, 완성도 등 애플에게 크게 뒤쳐졌던 삼성이 어느새 추격자로 변모했다. ‘애플’ 하면 자연스레 ‘삼성’이 떠오르면서, 삼성은 애플과 함께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는 양강으로 올라섰다. 소송전이 라이벌 구도를 정착시켰고, 애플의 유일한 적수로 삼성이 자리잡게 됐다.
윤선희 한양대 교수는 "세계 모든 언론들이 애플과의 소송을 다루다 보니 삼성으로선 엄청난 광고 효과를 거두게 됐다"고 말했고, 이세철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삼성으로서는 특허분쟁 장기화에 따라 언론 노출 빈도가 높아져 애플과 대등한 회사로 인식되는 등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계기가 됐다"고 평했다.
삼성도 이를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애플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효과를 거둔 측면이 분명 있다”면서 “막대한 소송비용과 장기전에 따른 피로, 불확실성의 증대 등 손해 본 것도 있지만 애플을 따라 잡을 수 있는 부수입도 뒤따랐다”고 말했다. 애플이 포문을 열 때 보였던 위기감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반면 애플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스티브 잡스가 생전 “필요하다면 죽는 순간까지 남은 내 인생과 은행에 있는 400억달러를 모조리 바쳐 안드로이드를 무너뜨릴 것”이라며 “도둑과 같은 안드로이드와는 핵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고 강한 피해의식을 드러낸 것이 그 발단이었다.
iOS를 기반으로 한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대를 열어 젖혔음에도 구글이 이를 본떠 안드로이드를 개발하고, 삼성이 막강한 제조력을 앞세워 안드로이드의 선봉장으로 나선 데 대한 잡스의 반감은 지독했다. 애플이 행동대장 격인 삼성을 짓누르지 않고서는 안드로이드 진영을 초토화시킬 수 없다고 본 것도 이 때문이다.
창업주의 이 같은 반감은 애플의 미래를 물려받은 팀 쿡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특허분쟁에 임하는 삼성에 대해 “애플은 창작물을 복제하는 회사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조치에 나선 것인데 삼성이 휴대폰 제조에 필수적인 표준특허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소하고 나선 것은 공평하지 않다”면서 “한마디로 미친 짓으로, 광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합리적 온건주의자로 불렸던 그의 성향에 미뤄보면 작심한 독설이었다. 삼성을 ‘카피캣’(모방자)으로 규정한 잡스의 저주는 팀 쿡에까지 계승되며 애플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나 2012년 들어 스마트폰 세계시장 점유율과 전체 판매량에서 삼성에게 뒤처지기 시작하자 분노는 위기감으로 바뀌었다. ‘원조’의 의미가 퇴색하면서 시장 지배자의 위치도 내놓게 된 것이다.
대만의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2013년 2분기 스마트폰 출하량' 관련 보고서를 보면, 삼성은 올 2분기 글로벌 시장에서 7100만대의 스마트폰을 팔아치우며 압도적 시장 1위를 기록했다. 시장점유율은 32.0%로, 2위인 애플(12.1%)과의 격차는 무려 19.9%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앞서 미 시장조사기관 IDC가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해 스마트폰과 피처폰을 합해 4억700만대의 휴대전화를 판매해 3억3560만대에 그친 노키아를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삼성은 같은 기간 스마트폰 판매량에서도 2억1580만대를 판매해 1억3680만대를 판 애플을 ‘더블 스코어’로 앞섰다.
◇삼성전자 vs. 애플 특허소송 진행 일지(자료제공=삼성전자)
◇법정 제재, 실질적 효력 없어..실익 없는 싸움에 시장은 실종
특허전이 양사의 시장 위치를 극명하게 뒤바꿨다면 소송 결과는 누구에게도 실익 없는 공방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분쟁을 유발한 특허 내용이 최첨단의 기술을 다루고 있는 만큼 법정 결론까지 평균 2년이라는 시일이 소요되는 반면 스마트 기기의 탄생과 소멸 주기는 더욱 짧아지고 있다.
때문에 법정에서 일방적 결과로 판결이 나더라도 실제 당사자가 입을 피해는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철 지난 상품에 뒤늦게 규제가 내려지면서 영향이 미칠 적기는 지나쳤다는 분석이다. 게다가 특허소송의 특성 상 어느 한쪽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이미 각국의 판례로 증명됐다.
실제 미 ITC가 애플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여 삼성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다 해도 해당 제품은 ‘갤럭시S’와 ‘갤럭시S2’, ‘넥서스’, ‘갤럭시탭’ 등 모두 구형 모델들로 한정된다. 시장에서 이를 찾는 소비자들이 없을뿐더러 설령 수요가 있더라도 확보된 재고물량만으로도 충분히 처리 가능하다.
다만 삼성으로서는 결론이 어찌 나든 ‘모방자’라는 부정적 이미지는 당분간 떠안고 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허전의 발발지였던 미 산호세 법원 배심원단은 지난해 8월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과 UI 등 특허를 침해했다며 10억5000만달러(1조2000억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한 바 있다.
이후 올 3월 해당 법원(루시 고 판사)이 4억5050만달러를 삭감, 5억9950만달러로 배상액을 낮췄지만 삼성의 ‘베끼기’ 시비는 미국 소비자들에게 사실로 각인됐다. 지금의 삼성이 있게 한 패스트 팔로워(추격자) 전략이 사실은 소니와 애플 등 기존 1등에 대한 모방에서 비롯됐다는 부정적 인식이 고착화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애플의 아이폰3와 삼성전자의 갤럭시S. 특히 직사각형의 둥근 모서리 외관은 삼성이 애플의 디자인을 그대로 베꼈다는 시비를 불러오는 단초가 됐다.(사진제공=애플, 삼성전자)
물론 상처의 깊이는 다르지만 서로가 일정 부분 생채기를 낸 가운데 양사가 크로스 라이선스(교차특허) 합의에 이를 것이란 관측이 현재로서는 지배적이다. 삼성으로서는 불확실성을 빨리 털고 역량을 시장에 집중하길 원하며, 애플 역시 남은 것 하나 없는 싸움을 이제라도 중지하고 실익(특허비)이라도 챙길 것이란 게 업계의 대체적 전망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애플은 잡스를 잃으면서 혁신마저 잃어버렸다. 더 이상의 혁신을 기대할 수 없게 되면서 시장은 고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수요가 급락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초기 열광이 식으면서 아이폰이 상징하던 고가의 하이엔드 스마트폰이 설 자리를 잃게 된 것이다. 이는 갤럭시S 시리즈로 대표되는 삼성의 수익구조에도 적잖은 변화를 몰고 왔다.
다만 삼성의 시장 지배적 위치는 당분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시장구도가 기존의 일반 전자제품 시장과 같아지면서 삼성의 최대 장점인 제조력, 유통력, 마케팅 등이 더 힘을 받고 있다. 가히 독주체제가 펼쳐진 것이다.
여기에다 단일제품만을 찍어내는 애플과 달리 삼성의 다양한 포트폴리오는 선진국 수요 부진을 신흥시장에서 상쇄하게끔 만들었다. 애플이 일명 아이폰5C로 불리는 중저가 스마트폰을 통해 뒤늦게나마 중국 등 신흥국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다.
양사가 ‘특허’라는 자존심 싸움에 매달리면서 시장이 바라던 혁신은 실종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는 애플의 좌초를, 반대로 삼성의 비약을 가져왔지만, 잡스가 열어젖힌 새로운 시장은 더 이상 보이질 않게 됐다. 경쟁자에게도 과감히 기술 개발의 길을 열고, 서로가 시너지를 내는 윈윈 구도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답은 여전히 시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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