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이상 지속됐던 세계 반도체업계의 '치킨게임(Chicken Game)'이 마침내 종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신호들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반도체업계들로 하여금 출혈 경영을 강요했던 생존게임이 종료 수순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징후로는 ▲세계 D램 5위권 업체인 독일 키몬다 파산 ▲D램, 낸드플래시 가격의 하락 중단 ▲D램 업계 합종연횡 난항 등 3가지.
특히 설 연휴 직전인 지난 23일 독일의 D램 업체 키몬다의 파산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는 "마침내 반도체 시장의 수급 상황이 정상화될 수 있게 됐다"며 치킨게임의 조기 종식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키몬다는 지난 달 독일 작센주 정부와 모회사인 인피니온 테크놀로지, 포르투갈 은행 등으로부터 3억2500만 유로(한화 약 5천900억 원)를 지원받아 회생을 면했지만, 기술 경쟁력에 대한 회의적 평가와 추가 지원에 대한 부담 등으로 지원이 지연되면서 결국 파산을 피하지는 못했다.
업계 1위로서 지난해 3분기 유일하게 흑자를 냈던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마저도 지난 23일 발표된 실적발표에서 연결기준 6900억 원의 영업손실(영업이익률 -14%)을 기록하고, 난야(영업이익률 -105.6%), 이노테라(-57.9%) 등 다른 업체들도 최악의 실적을 내는 상황에서 자금난이 심각하던 키몬다가 정부 지원에도 불구하고 먼저 백기를 든 것이다.
시장조사기관인 아이서플라이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전세계 D램 시장은 삼성전자가 30.2%로 1위, 하이닉스 19.3%로 2위, 일본 엘피다 15.8%로 3위, 미국 마이크론 10.3%로 4위, 독일 키몬다가 9.8%로 5위다.
키몬다 파산으로 당장 기대되는 효과는 반도체 공급 과잉 해소이며, 세계 시장 1,2위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는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키몬다 파산은 정부지원으로도 연명하기 힘들 정도로 시장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지금 곧 치킨게임이 끝난다고 말하기는 성급하지만, 세계 5위권 업체인 키몬다가 정상적으로 생산활동을 할 수는 없게 된 만큼 비정상적인 공급 과잉 상태가 해소되는 데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 관계자도 "키몬다는 주로 메인 컴퓨터와 그래픽 시장에 D램을 공급해오던 업체였는데 파산으로 인해 업계 전체의 감산 속도가 빨라지고 메모리 수급 시장의 정상화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치킨게임 종식을 알리는 또 하나의 신호는 새해 들어 추가 하락을 멈추고 강보합세를 보이고 있는 D램 및 낸드플래시 가격이다.
D램 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과 낸드플래시 고정거래가는 작년 7월 이후 처음으로 하락세를 멈추고 보합세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4분기부터 시작된 업계의 감산효과가 반영된 것이어서 키몬다 파산으로 공급이 더 줄어들면 효과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생존전략 차원에서 엘피다와 마이크론 두 축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D램 업계의 합종연횡이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도 치킨게임 연장전이 더이상 길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낳는 근거가 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들간의 이견으로 인해 합종연횡 논의가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키몬다 파산으로 인해 합종연횡을 모색해오던 업계의 전략적인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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