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가을 초입,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울려 퍼진 말러의 교향곡 9번이 관객들의 감성을 흠뻑 적셨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지난 29일과 30일 이틀 간 열린 특별음악회 '정명훈의 말러 교향곡 9번'과 '정명훈과 카바코스 : 마스피스 시리즈 IV'를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독일의 유명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의 일곱번째 서울시향 음반 녹음을 겸해 열린 이번 콘서트는 서울시향과 정명훈 지휘자가 지난 여름을 얼마나 치열하게 보냈을 지 짐작하게 했다.
이틀 간 연주 프로그램은 동일하게 구성됐다. 1부에 먼저 연주된 곡은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였다. 그리스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가 2007년 이후 두 번째로 서울시향과 협연에 나섰고, 역시나 파가니니 콩쿠르 우승자답게 절정의 기교를 자랑하며 호연을 펼쳤다.
그러나 단연 관객의 귀를 사로잡은 것은 2부의 말러 교향곡 9번이었다. 이 곡은 죽음과 이별의 교향곡으로 불린다. 삶의 회한과 미련, 동경과 체념이 가득 담긴 이 곡을 정명훈과 서울시향은 기승전결 분명한 한 편의 서사시처럼 완성도 있게 그려냈다. 연주시간이 80여 분에 달했는 데도 이들의 음악은 지루할 틈 없이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사진제공=서울시립교향악단)
정명훈 지휘자는 1악장을 무척이나 조심스럽게 시작하며 죽음과 이별이라는 주제의 묵직함을 실감하게 했다. 지휘봉에 맞춰 첼로와 호른, 하프, 비올라는 작고 짤막하면서도 신중한 음을 냈고, 바이올린 또한 진중한 흐름을 이어받았다. 이윽고 오케스트라는 죽음이라는 숙명에 대한 인간의 다채로운 감정을 표현하며 관객을 자연스럽게 음악 속으로 끌어들였다.
2악장은 스케르초 악장으로 빠르게 흘러간다. 연주자들은 초반에는 유머러스하고 경쾌한 분위기를 자아내다가 점차 속도를 높이면서 광기를 내비치는데, 삶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 같은 복잡다단한 감정들이 마치 혼돈 속에 뒤엉키는 듯했다.
3악장은 마치 광풍과도 같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정명훈은 1악장과는 확연히 다른 태도로, 전혀 주저함 없이 단호하게 3악장을 지휘하기 시작했다. 연주자들은 격렬한 투쟁을 담은 듯한 이 악장을 전반적으로 다이내믹하게 이끌어나가면서도 곡 중간 언뜻언뜻 비치는 애잔함을 잊지 않고 표현해냈다. 막바지에는 금관악기까지 최대한의 소리를 내며 엄청난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했다.
4악장은 음악을 풍성함에서 겸허함으로 차근히 발전시키며 죽음과 작별을 받아들여질 만한 것으로 만들었다. 첼로의 솔로 연주를 비롯해 섬세한 현악파트가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관객의 마음을 잔잔히 달랬다.
이번 연주의 감동이 특히 컸던 것은 대부분의 악기파트가 고른 기량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목관파트에서는 바순과 클라리넷의 정확하면서도 부드러운 음색이 돋보였다. 현악기 파트는 예전보다 한결 성숙한 음색을 선보였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은 금관파트였다. 너무 튀지 않게, 소리의 균형을 든든히 뒷받침한 금관은 말러 음악의 품격을 한결 더 높이는 데 일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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