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관상', 운명이라는 재난에 맞선 이야기
2013-09-06 11:31:32 2013-09-06 11:34:43
(사진제공=쇼박스 미디어플렉스)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영화 '관상'은 거대한 권력과 운명이라는 소용돌이 앞에 선 한 관상가가 느낀 개인의 나약함과 패배감을 전하고자 한다.
 
얼굴만 보면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 미래 뿐만 아니라 속마음까지도 꿰뚫어보는 관상가 박내경(송강호 분)이 조선시대 가장 드라마틱한 역사적 사건인 계유정란에 휘말리는 내용을 골자로 담는다.
 
가상의 인물과 실제 사건을 연결시킨 이 영화는 충신 김종서(백윤식 분)와 조카 단종을 죽이고 왕위를 찬탈하는 수양대군(이정재 분)의 역모를 막아내려는 관상가의 이야기다.
  
(사진제공=쇼박스 미디어플렉스)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
 
이 영화는 캐스팅부터 면면이 화려하다. 송강호를 비롯해 이정재, 백윤식, 김혜수, 조정석, 이종석이 출연한다.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문종 역에 김태우도 등장한다. 캐스팅으로만 보면 엄청난 스케일이다.
 
'관상'의 큰 장점은 이 출연진의 캐릭터들 모두가 생동감이 넘친다는데 있다.
 
특히 역사상 최고 섹시한 역적이 된 수양대군은 이제껏 그려졌던 수양대군과 다르다. 대충 걸쳐입은 곤룡포에 술병을 들고 거만하게 말하는 수양대군의 이미지는 신선하고 새롭다.
 
원리원칙의 소유자로서 무게감을 주는 김종서, 내경의 보좌관이자 조선시대판 '납득이'  팽헌(조정석 분), '타짜' 정마담보다 더 가벼운 느낌의 조선 최고의 기생 연홍(김혜수 분), 유학의 가르침에 충실한 진형(이종석 분)까지 캐릭터 모두 갓 잡은 생선처럼 펄떡펄떡 뛰는 느낌이다.
 
수양대군의 역모를 미리 예상한 허약한 문종(김태우 분)의 캐릭터도 분량은 짧지만 존재감이 뚜렷하다.
 
(사진제공=쇼박스 미디어플렉스)
 
◇여전히 대단한 송강호의 연기력
 
국내 최고의 연기파 배우 송강호를 또 칭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만은 '관상'에서 송강호의 연기력은 타 영화와 다른 지점이 있다. 송강호의 연기는 '관상' 전체에 힘을 주고 다른 캐릭터에 생동감을 주는 데 크게 기여한다.
 
영화 속 내경이 어떤 인물을 보는 장면에서 모든 인물이 뒷모습으로 등장하는데, 그 다음 내경이 그 인물의 관상을 보고 느끼는 표정이 중요하다. 이 캐릭터의 색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내경이 김종서를 보고 경외스럽다는 듯이 놀라움을 느끼는 표정이나, 수양을 보고 먹먹하고 고통스럽다는 듯한 표정은 이 영화가 주는 묘미다. 이를 연기한 송강호는 적절한 표정과 눈빛 등의 연기로 모든 캐릭터에 힘을 얹었다. 송강호가 아니었다면 '관상'의 수 많은 캐릭터들이 힘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더불어 팽헌을 연기한 조정석과의 유머 호흡,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오열 직전 '꺽꺽'대는 장면, 마지막 거대한 파도를 바라보는 눈빛 등 그의 연기는 극중에서 다채롭게 살아숨쉰다.
 
(사진제공=쇼박스 미디어플렉스)
 
◇다채로운 유머코드
 
초반 한 시간 동안 '관상'은 코믹 영화를 방불케할 정도로 유머가 이어진다. 그 중심은 내경과 팽헌이다.
 
어수룩하면서도 할 말은 다하고, 성깔도 있으면서 누구보다도 심성이 착한 팽헌을 연기한 조정석의 힘은 송강호와 함께 초반을 사로잡는다. 마치 영화 '건축학개론' 납득이가 조선시대에서 되살아난 느낌이 들 정도다.
 
송강호와 조정석의 연기 합은 그만큼 좋다. 특히 두 사람이 기생집에서 춤을 추는 장면은 임팩트가 강하다. 억지로 웃기려고 웃기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흐르는 이 영화의 유머는 코미디 프로그램보다 뛰어나다.
 
◇묵직한 메시지
 
전작 '연애의 목적'과 '우아한 세계'를 통해 인간의 심리묘사를 탁월하게 표현했던 한재림 감독은 이번에 '관상'을 토대로 묵직한 메시지를 통해 소통하고자 한다.
 
제목부터 관상이다보니 이에 대한 해학이 많이 담겨 있을 것 같지만, 관상을 파헤치지는 않는다. 관상을 보는 내경의 이야기만 있을 뿐이다.
 
영화가 주고려는 메시지는 운명을 거스르고자 했던 관상가가 끝내 패배하면서 느끼는 공허함 같은 것이다. 그동안 수많이 다루어졌던 계유정란을 또다시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영화는 '죽을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영화 '데스티네이션'처럼 그 캐릭터의 운명대로 흘러간다. 후반부에는 그 운명 때문에 얻은 상처, 슬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운명'이라는 단어에 곰곰히 빠져들게 만드는 작품이다.
 
(사진제공=쇼박스 미디어플렉스)
 
긴 상영시간은 아쉬워
 
영화는 139분 동안 진행된다. 약 2시간 20분. 적지 않은 시간이다. 실제로도 다소 길게 느껴진다.
 
특히 수양대군이 등장하는 1시간 뒤부터 그렇다. 영화가 길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해한다. 영화의 설정이 계유정란이라는 실제 사건에 내경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집어넣은 것이다보니 '그럴듯 하다'는 느낌과 뒷부분에서 펼쳐지는 묵직한 메시지와 감동을 줘야했다.
 
그만큼 영화의 논리와 연결마다의 디테일이 살아있어야했다. 그러다보니 역사적 설명이 많이 필요했다.
 
이 작업이 필요했음은 인정하고, 뒷부분의 감동과 메시지 역시 강렬하게 다가오지만 중반부가 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한 15분 정도 잘라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수양대군 등장 전후 분위기 달라
 
내경과 팽헌이 한양에 입성하는 초반 한 시간은 숨가쁘고 재밌게 흘러간다. 그러던 중 수양대군이 등장하면서 갑작스럽게 영화는 무겁고 느리게 진행된다.
 
수양대군 등장 전과 후는 마치 무 자르듯이 반으로 뚝 자른 기분이다. 
 
애당초 '관상' 시나리오 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무거웠다고 한다. 그래서 초반부 시나리오를 각색해 나가면서 촬영을 진행했다고 한다. 초반부와 중·후반부의 분위기를 조금 더 자연스럽게 끌고갔다면 한층 완성도가 높지 않았을까 한다.
 
오는 11일 개봉.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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