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예산, 코앞에 닥쳤지만 정부가 '쉬쉬'하는 이유?
2013-11-25 16:46:38 2013-11-25 16:50:37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12월 한달이면 충분히 예산처리가 가능하다. 준예산은 없다."
 
연일 외치는 정부 관계자들의 장담이 자신없게 들릴 정도로 정치상황이 좋지 않다.
 
당장 여기저기서 준(準)예산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정부는 '쉬쉬'하는 분위기다.
 
준예산을 공론화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복잡하기 때문이다.
 
25일 기획재정부 고위관계자는 "준예산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당연히 준비는 해야하지만, 준예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공언할 수는 없다. 정치인들 자극해서 좋을게 뭐가 있냐"면서 "현재로서는 준예산이 편성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준예산 가능성에 대한 준비를 하고는 있지만, 준예산을 공론화해서 굳이 넘기지 말아야 할 기한을 넘길 가능성을 더 높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준예산에 대한 언급을 최소화하는 것은 이처럼 정치적인 자극을 최소화하려는 의미도 있지만, 준예산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단 한번도 시행된 적이 없어 이른바 '미지의 시계'로 통하는 준예산이 가져올 파장을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입법미비'다.
 
준예산은 12월31일로 회계연도가 끝난 후에도 새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에 전년도에 준해서 우선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한 헌법 규정이다.
 
미국과 같이 정치적인 이유로 예산안이 처리되지 못하더라도 행정부가 중단이 되는 '셧다운(shutdawn·잠정폐쇄)'을 우려하지는 않아도 되도록 헌법적인 조치가 마련돼 있지만, 헌법 조항을 적용할 수 있는 후속입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헌법에 전년도에 준해서 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돼 있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예산을 얼마나 전년도에 준해서 집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정해 놓은 법률이 없는 것.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준예산이 집행돼도 (헌법상 조문 외에) 마땅한 근거가 없어 상당한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며 "국회가 법정시한 안에 예산안을 통과시켜주길 기대한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헌법 제54조는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 ▲법률상 지출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계속사업에 한해서만 전년도 예산에 준해서 준예산을 집행할 수 있도록 '3가지' 준예산 적용대상을 열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은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된 것을 따져보면 될 일이지만, 관련법령이 없이 해당시설의 유지와 운영에 소요되는 예산을 어느 선까지로 보느냐에 대해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법률상의 지출의무 이행도 영유아보육이나 기초노령연급처럼 법률에 '지출해야 한다'라고 언급된 항목의 경우 범위가 선명할 수 있지만, 그 외의 경우 해석에 따라 법률상의 지출의무로 봐야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준예산까지 가게 된다면 헌법에서 명시한 편성가능예산의 범위를 놓고 법리해석에 대한 논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은 우선 취약계층에 대한 예산지원 중단을 전면에 내세워 야당을 압박하고 있다.
 
준예산으로 가게 될 경우 공공기관에 고용된 계약직 근로자들의 임급지급이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복지예산 지원 등이 끊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석준 기재부 제2차관은 지난 22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상상하기도 싫지만 준예산을 편성하게 된다면 서민·취약계층을 지원하기 위한 재량지출 부분을 지출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고 준예산에 대한 파장을 경고했다.
 
이와 관련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준예산에 대해서는 입법미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로서는 법령해석을 통해 재정의 절벽을 최소화하려 노력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법령에서 결정해야 할 부분은 국회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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