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정기종기자] "팬택을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에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이준우 팬택 대표는 10일 기자회견을 자처해 출자전환에 묵묵부답인 이동통신사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호소하고, 또 간청했다. 국내 벤처기업의 신화로 여겨지는 팬택이 침몰 위기에 직면했다. 숱한 어려움에도 끝내 일어서며 오뚝이로까지 불렸던 팬택이 회생 불능으로 치닫고 있다.
몇개월 전만 해도 사정이 이렇지까지 극단적이진 않았다. 팬택은 올 1·2월 연속 흑자를 내며 재기 발판을 다지고 있었다. 재무구조 개선 및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난해 대규모의 구조조정도 감행했다. 그렇게 실낱 같은 희망을 이어가던 과정에서 정부가 이통사들의 불법 보조금 영업에 철퇴를 내렸다.
이게 팬택에 치명적인 독이 됐다. 이통사들은 순차적으로 영업정지에 돌입했고,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야심차게 내놓은 베가 아이언2는 시장의 기대와 호평 속에서도 공장 문을 나서지 못했다. 소비자들과의 접점(유통채널)이 사라지면서 아이언2는 날개짓을 잃었다.
결국 팬택은 존폐 위기에 몰렸다. 현재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추진하는 매출채권은 4800억원 규모다. 이중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보유한 매출채권은 3000억원이며, 이통3사가 보유한 팬택의 매출채권은 1800억원이다. 채권단이 3000억원을 이미 출자전환하기로 한 가운데 이통사의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채권단은 지난 4일 이통사의 출자전환을 조건부로 내걸고 팬택의 채무 상환 결정을 8일로 미뤘다. 이통사가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자 채권단은 한 번 더 기간을 연장했다. 고통분담을 하자며 압박을 하고 있으나 이통사들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사실상 거부다. 여기에 발목이 잡혔다.
정부도 다를 바 없다.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정부 소관부처는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 시행 시 비대칭적 규제를 바라는 팬택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약자에 대한 배려 없는 일괄적 기준이 제시됐다.
팬택 사태에 대해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 모습이다. 이통사가 끝내 출자전환을 거부할 경우 팬택은 1차 부도를 맞는다. 상황이 극단으로 치닫자 그동안 초조함에도 침묵을 지키던 팬택이 입을 열었다. 이준우 대표가 직접 나서 눈물로 마지막 호소를 했다.
◇이준우 팬택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본사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업개선(워크아웃) 진행 현황에 대한 입장을 밝히던 중 취재진의 질문을 앞두고 생각에 잠겨 있다. ⓒNews1
이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마포구 상암동 팬택 본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차별화된 제품과 기술력으로 이통사에 기여를 해왔음에도 현재 팬택 상황은 이통사에 큰 짐이 된 것 같다"고 운을 뗐다.
이 대표는 "채권단 제시안이 이통사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제안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대한민국 이동통신 산업 생태계에서 팬택이 존속할 수 있도록 채권단 제시안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주길 간절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회생에 대한 자신감도 내비쳤다. 이 대표는 "경영정상화 방안은 수개월간 실사를 기반으로 팬택의 5개년 계획을 더해 나왔다"며 "재무구조개선 방안 중 채권단이 제시한 안과 사업자 요청 등이 제대로 된다는 전제 하에 생존에 전혀 문제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출자전환이 이뤄지고 채권단 제시안대로 되면 외부자금 없이 독자생존할 수 있다"며 "방안 중에는 해외 매출이 2년 후부터 늘어나는 걸로 돼 있는데 이를 1년으로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 외부 투자까지 더해지면 회생의 속도는 더 빨라진다.
이 같은 팬택의 호소에도 이통사들은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특히 SK텔레콤이 출자전환 거부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통3사간 암묵적 합의가 이뤄진 채 여론 눈치만 살피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동통신시장 1위인 SK텔레콤은 "팬택의 상황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고민 중"이라면서도 "주주 가치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회사에 미치는 영향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한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통사로서도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임을 알아달라"고 덧붙였다.
시장은 뒤바뀐 처지에 주목했다. 과거 마땅한 주인을 찾지 못하던 SK텔레텍을 팬택이 인수했다. 또 100% 고용승계를 약속했고, 이를 지켰다. 소버린의 공세로 경영권이 위협에 처했을 때는 수차례 지분 매입을 통해 백기사를 자처했다.
KT 역시 달라질 게 없다는 입장이다. KT 관계자는 "팬택이 이런 상황에까지 처한 것이 이통사로서 안타깝다. 회생해서 IT 산업발전에 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며 "주주문제가 있고 통신사 내부사정도 호락호락 하지 않다보니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LG유플러스도 "고려할 사항이 많다보니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내놨다. 이동통신업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바뀔 게 없다"며 "이미 3사 모두 출자전환을 거부하는 것으로 내부방침을 정했다"고 말했다. 또 "오히려 이번 팬택 기자회견을 여론전으로 보고 냉랭해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제조업계 관계자도 "이통사는 일관되게 출자전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는데 오늘 기자회견으로 갑자기 마음이 돌아설 수는 없을 것"이라며 "아직 기한이 남아 있으니 좀 더 지켜봐야 회생 여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팬택은 이번 위기를 넘기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팬택 고위 관계자는 "회생을 위해 이통사와 채권단을 설득하는 등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대로 좌초되기에는 팬택의 상징성이 크다. 그간 순탄치 않았던 여정의 마침표가 찍힐지, 다시 여정을 이어갈 지는 이통사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