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방글아기자] 최근 건설사 입찰담합 행위에 연이어 공정위의 제재가 가해지면서 이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일부는 건설사들이 취한 이득에 견줘 과징금 수준이 너무 낮은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하고, 다른 한측은 업계불황을 고려치 않은 '건설사 죽이기'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일차적인 원인은 서로 다른 입장 차겠지만 공정위 제재 결정 과정의 모호성과 이로 인한 '불공정성'에도 그 원인이 있다. OECD 경쟁위원회 부의장국을 맡고 있는 한국 공정위로서는 선제적인 개선이 시급한 부분이다. 뉴스토마토는 공정위의 경쟁법 집행 과정을 짚어보고 문제점과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편집자]
관습이 '나쁠수록' 관련 범죄의 범법자에 대한 처벌 수준은 낮아진다. 해당 범죄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를 참작해 법원이 '국민의 법감정'을 들어 '약한' 판결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국민 법감정에 근거했다는 판결은 '상습적' 논란거리다. 특히 처벌 수위가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했을 때는 사회적 공분이 인다. 성폭행 등 흉학사범에 대한 판결이 대표적인 예다.
이같은 문제는 경제 사건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불공정거래를 벌인 경제사범에 업계 '거래관행'을 들어 낮은 수준의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
공정거래위원회는 법원의 법감정 규정과 유사한 '거래관행에 따른 부당성 심사지침'을 두고 있다.
일례로, 자본을 동원해 영세업체를 '죽일' 수 있는 방법중 하나인 부당 '고객 빼오기'에 대해 공정위는 이중잣대를 취한다. 가격덤핑과 같은 공격적 마케팅이 그 업계에서 이미 얼마나 '흔하냐'에 따라 같은 혐의에도 제재 수위가 달라지는 것.
지난달 29일 상조업체 부모사랑상조는 과도한 이관비 깎아주기 등을 통해 부당하게 고객을 유인한 혐의로 적발돼 검찰에 고발 조치됐다. 지난 2012년 3월 유사 혐의를 빚은 통신3사가 과징금을 물고 만 것과 상반된다.
오히려 통신업계 진흥을 담당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이들의 거래 관행 개선에 나섰다. '보조금 퍼주기'에 대한 엄중 처벌 방침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통신사 본부가 아닌 유통대리점들만 검찰에 고발하면서 논란만 빚은 채 일단락됐다.
이와 관련 공정위 관계자는 "상조업계는 자본금 대부분이 '고객 돈'인 점을 고려해 과징금 부과대신 고발 조치를 결정한 것"이라며 "(가격덤핑 기준은) 업계의 정상적인 거래관행과 비교해야 한다. 상조업계에서는 이같은 관행이 일반적이지 않아 부모사랑상조의 위법 사항이 문제시된 것"이라면서 "현재까지 통신업계에서 (이같은 거래관행이) 문제된 바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불공정 거래관행도 '일반적'이면 참작해 문제 삼지 않는다는 요지의 발언이다. 이는 공정위의 역할인 불공정 거래관행 개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원칙적으로 공정위는 거래관행이 나쁜 업계에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 경쟁법 집행과 불공정업체 제재 등이 지향하는 곳이 결국 불공정한 '구조' 개선이기 때문.
구조적 개선 없이는 해당 관행이 다른 업계에 옮아 가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다. 불공정 거래관행은 '업계특성'과 관계 없이 '시장상태'에 따라 유사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예로 들은 가격덤핑 관행 역시 포화상태에 다다른 시장이라면 어느 업계에서든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두 업계 모두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점은 고려치 않고, 이미 해당 업계에 존재하는 관행에 견줘 제재 수위를 결정했다. 새로운 고객의 유치보다 고객 빼오기를 일삼아온 통신업계의 '묵은 관행'은 봐주고, 상조업계의 유사한 '새 관행'만 문제 삼은 것. 이는 최근 부쩍 늘어난 상조상품 광고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이같은 '업계간 차별' 문제는 공정위의 제재 결정 과정에서 비롯된다. 공정위가 소관 법령 위법 사업자에 가할 수 있는 제재는 크게 행정적, 형사적, 민사적 제재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시정조치·과징금·동의의결 등의 행정처분을 내리거나 검찰에 고발, 피해업체 손해배상을 명령하는 것 등이다.
이중 검찰 고발이 가장 높은 수준의 처분으로 이해되며, 일반적으로 과징금 이상의 처분을 두고 '중대'한 처벌로 본다.
그런데 이 '중대성' 판단의 참작사항에 업계의 거래관행이 있다.
◇공정위 '과징금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 일부 발췌
공정위는 과징금을 부과할 때 먼저 부과기초금액을 산정하고, 1~2차 가·감경 조정 과정을 거쳐 과징 액수를 결정한다. '업계 거래관행대비' 위법의 중대성은 첫 단계인 기초금액 산정 과정에 반영된다.
그런데 법원의 법감정에 근거한 판결에 대한 문제 제기가 지속적으로 이뤄져온 것과 달리 공정위의 거래관행 반영 제재에 대한 논의는 아직 부족하다. 공정위 제재 관련 비판이 '과징금이 너무 높다거나 낮다'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서울 신촌 소재 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가르치는 교수 A씨는 "공정위의 제재가 업계 관행을 바꾸도록 할만큼 '무섭지' 않은 게 근본적 문제"라며 "최근 건설사들도 잇따른 처벌에 곡소리를 하고 있지만 사실상 (담합을 통해 얻은) 부당이득이 물려진 과징금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 관계자도 "여러 차례에 걸친 과징금 감경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점도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공정성'은 결과뿐 아니라 절차상에서도 담보돼야 하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과징금 고시 등 현행 심사방식은 현재까지 누적된 경쟁정책 방향의 결과"라며 "심사위원들은 현행 법령에 따라 제재 수위를 정하는 역할이고, 이렇게 나온 제재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부각되면 관련 정책방향도 바뀌고, 그에 맞는 제도 개선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관행 타파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과제긴 하지만, 거래관행을 인정하기 앞서 관행의 정당성부터 따져보는 것이 공정위의 임무다. 필요하다면 관련 심사 제도의 정비에도 적극 나서야할 것으로 보인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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