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사-일동제약 인수전 '잠행'..시간싸움에 눈치작전
2014-08-28 15:34:21 2014-08-28 15:38:42
[뉴스토마토 이지영기자] 올해 제약업계 최대 이슈 중 하나는 단연 M&A다. 시장구도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데다, 밀려드는 다국적 제약사에 맞설 규모의 경제 실현 여부가 여기에 달렸다. 다만 암묵적으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침범을 꺼리던 제약사 문화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이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끈 인수전은 녹십자와 일동제약의 피말리는 접전이다. 녹십자는 올 초 일동제약 지분을 급격히 끌어올린 뒤 일동제약 주주총회에서 지주사로서의 전환을 부결시켰다. 이후 일동제약에 대한 M&A 여부를 공식 부인했지만, 시장은 이를 믿지 않았다. 이미 일동제약 경영진을 견제할 충분한 지분이 확보된 만큼 시간을 두고 공세를 취할 것으로 해석됐다. 이는 곧 일동제약 주가에도 반영돼 1만원 아래 있던 주가가 한때 1만7900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28일 종가는 1만44-0원을 기록, 1만4000원 선을 유지했다.
 
M&A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은 여전하지만 녹십자와 일동제약, 양사 모두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어 궁금증은 커져만 가고 있다. 녹십자의 추가 공격도, 일동제약의 방어도 뚜렷이 드러난 게 없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 관계자들은 "녹십자의 그간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며 "조용히 때를 기다릴 뿐, 포기할 리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일동제약으로서는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녹십자의 거친 공세에 직면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한 관계자는 "3대주주로 인수전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피델리티의 지분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녹십자는 지난 1월 일동제약의 지분을 끌어올리며 보유 목적도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로 변경했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됐다. 녹십자는 당시 지분 12.57%를 보유 중이던 이호찬 씨의 지분 전량을 매입했다. 일동제약과 우호관계에 있던 이호찬 씨가 녹십자의 구애에 이익 추구로 돌아섰다. 이와 함께 녹십자홀딩스와 녹십자셀도 각각 0.88%, 0.99%의 지분을 취득해 녹십자의 일동제약 총 지분율은 15.35%에서 29.36%로 대폭 늘었다.
 
양사의 지분 경쟁은 지난 2012년에도 한 차례 있었다. 녹십자는 2012년 12월 환인제약으로부터 177만주를 취득해 기존 8.28%에서 15.35%로 지분율을 높였다. 이때 위기감을 느낀 일동제약은 녹십자가 취득한 주식과 비슷한 규모의(175만주) 주식을 사들이며 맞대응했다. 동원 가능한 자본력에 있어서는 일동제약이 녹십자를 쫓지 못한다.
 
현재 일동제약의 지분 구성을 보면 윤원영 일동제약 회장이 6.42%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가운데, 임경자 일동제약 회장 부인(2.67%), 윤웅섭 일동제약 부사장(1.63%), 이금기 일동후디스 회장(5.47%), 특수관계인인 일동후디스, 씨엠제이, 기타 특별관계인이 각각 1.44%, 8.34%, 9.32% 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녹십자가 29.39%, 피델리티(9.99%), 기타(25.36%)로 구성돼 있다. 일동후디스와 씨엠제이는 일동제약의 관계사다. 결과적으로 녹십자(29.36%)와 일동제약(34.16%)의 지분율 격차는 5%도 채 나지 않는다. 경영권은 피델리티가 누구의 손을 들어주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구도가 고착화되면서 캐스팅보트를 쥔 피델리티의 몸값는 높아졌다. 일종의 꽃놀이 패다.
 
녹십자의 M&A 실력은 이미 여러 차례의 인수합병을 통해 검증된 바 있다. 특히 지난 2003년 1600억원을 들여 녹십자생명(구 대신생명)을 인수해 8년 동안 꾸준한 수익을 확보한 후 지난 2011년 현대차그룹에 녹십자생명을 2280억원에 매각한 사례는 금융투자업계에도 정평이 나 있다.
 
이전 2000년에는 상아제약 지분을 조금씩 확보해 100%까지 끌어올린 후 지금의 녹십자(구 녹십자상아)의 위상을 갖춰놨다. 이때 상아제약을 인수하면서 녹십자는 수많은 바이오벤처기업들도 계열사로 편입시키거나 지분을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이후 경남제약 지분도 210억원에 인수했다가 향후 245억원에 매각하면서 35억원의 차익을 챙겼다.
 
2004년 녹십자는 지주사 전환을 하면서 녹십자홀딩스를 지주사로 두고 본격적으로 M&A시장에 뛰어들었다. 10년 동안 녹십자 홀딩스는 50여 곳의 지분 인수와 매각을 통해 녹십자의 덩치를 키우고 시세차익을 얻었다. 2012년에는 150억원을 투자해 이노셀(현재 녹십자셀) 지분을 인수했으며 이때 주가는 8개월만에 4배나 뛰어올랐다.
 
업계는 일동제약을 인수 했을 때 얻게 되는 시너지효과만 고려해도 인수합병 전문회사(?)로 거듭난 녹십자가 절대로 포기할 리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일동제약이 고분고분 경영권을 넘기지 않고 백기사를 찾아 지분을 넘기는 돌발행동을 사전 방지하기 위해 녹십자가 숨죽이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설명도 더해졌다.
 
녹십자가 일동제약 인수에 성공할 경우 현재 업계 1위 유한양행을 제치고 연간 매출 1조원을 거뜬히 넘기는 굴지의 제약사로 거듭날 수 있다. 외형적 성장과 함께 사업 포트폴리오 또한 안정적으로 꾸려진다. 실제 녹십자는 수년 전부터 사업다각화에 대한 고민을 해왔다. 녹십자와 일동제약이 합치면 각각 한 쪽으로 쏠린 매출구조의 편중 문제를 상쇄해 안정적인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게 된다.
 
현재 백신과 전문의약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사업구조에 일동제약의 일반의약품까지 더해지는 동시에 영업망의 확충 효과도 크다. 전문의약품으로 일반대중에게는 인지도가 낮은 녹십자에 비해 '아로나민 골드 등' 일반의약품으로 인지도가 높은 일동제약의 브랜드파워도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다 일동제약의 관계사인 일동후디스를 통해 오래 전부터 눈독을 들이던 분유시장에도 진출할 수 있게 된다. 
 
제약업계의 한 관계자는 "녹십자와 일동제약이 합치면 연 매출 1조2000억원대의 대형 제약사가 탄생하는 것으로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할 수 있는 규모"라며 "다만 제약업계는 다른 분야보다 동료의식이 강해 적대적 M&A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많은 만큼 녹십자가 무리수를 둬가며 합병을 추진할 지에 대해서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녹십자의 경우 그동안 꾸준히 신규사업 진출에 힘을 써 왔는데 일동제약을 거머쥐게 되면 일반의약품과 제네릭(복제역) 사업부문까지 완벽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피델리티는 지난 1월 일동제약 임시주총에서 녹십자가 일동제약의 지주사 전환을 반대하는 것에 손을 들어줬다"며 "녹십자는 당장이라도 우호지분을 매입해 적대적 인수를 추진할 수 있지만 업계 관계가 끈끈한 제약업계 특성상 상도의를 지키기 위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접근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녹십자의 경우 현금 보유율도 높은 데다, 일동제약 인수로 얻을 수 있는 시너지가 큰 상황이라 쉽사리 포기하지 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일동제약과 원만한 M&A를 진행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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