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혜교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20대 시절 여배우 송혜교는 남성팬들 사이에서 '종교'로 불렸다. "너 종교는 뭐야? 나는 송혜교야"라는 농담을 하던 시기도 있었다. 송혜교는 그런 스타 배우였다. 일찌감치 스타가 돼 신비로운 이미지를 유지하던 그였다.
드라마에서 종횡무진했다. <순풍산부인과>로 출발해 <가을동화>, <풀하우스>, <올인>, <그들이 사는 세상>을 비롯해 최근 <그 겨울, 바람이 분다>까지 송혜교는 예쁘고 연기도 잘하며 흥행력도 갖춘 여배우였다. 방송가에서 송혜교의 입지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하지만 충무로에서 입지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파랑주의보>, <황진이>, <오늘> 등 대부분의 영화가 흥행하지 못했다. 작품성이 의문시되는 영화가 꽤 있었다. "송혜교는 영화와 맞지 않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화에서 그의 힘은 드라마와 같지 않았다.
그런 그가 다시 한 번 충무로에 발을 들였다. 티켓파워를 갖춘 강동원과 <정사>, <조선상열남녀지사-스캔들>의 이재용 감독과 함께다. 제목은 <두근두근 내 인생>, 이번에는 느낌이 좋다.
17세 때 애를 낳은 철 없는 엄마 미라가 그가 맡은 역할이다. 선천성 조로증에 걸려 17세임에도 할아버지 같은 생김새를 가진 아름이를 향한 사랑을 보여준다.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준비를 하고 있는 송혜교를 지난 27일 만났다. 영화에서 민낯을 보여준 탓인지 이날의 송혜교는 유독 예뻐보였다. 얼굴은 여전했지만, 마음은 크게 성장해 있었다. 엄마를 연기한 탓이었을까 어른 같았다. 스타의 허세도, 자만심도 보이지 않았다. 진심이 드러났던 인터뷰였다.
◇송혜교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30대가 되면서 촬영현장이 좋아져"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송혜교는 민낯이다. 민낯의 송혜교는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다. 아줌마여야 해서 살도 좀 찌웠다. 짙은 화장을 걷어내고 아픈 아들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송혜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다.
화장을 지운 모습에 부담감이 없었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대답은 "NO"였다.
"믿어줄지 모르겠지만 작품하면서 예뻐보이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스타 송혜교로 출발했기 때문에 작품에서 굳이 예쁜 걸 추구할 생각을 못했어요. 얼마든지 예쁠 상황은 많거든요. 본업이 배우잖아요. 캐릭터로 봐주길 원하지 송혜교로 봐주길 원하지는 않아요."
모니터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 배우들이 모니터를 하는 이유는 연기를 어떻게 했나를 보는 것도 있지만, 자신이 못생기게 나오는 것을 막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송혜교는 <두근두근 내 인생> 촬영 중 모니터를 최대한 하지 않았다. 여배우에게 있어서는 의아한 행동이다.
송혜교는 "스태프 한 분이 왜 모니터를 안 하냐고 물어보더라. 모니터를 보고 여기 좀 지워줘라고 말 할 법한데 안 한다고. 그냥 동원씨랑 감독님에게 맡겼다. 연기를 하고 좀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찍고, 감독님이 OK를 시원하게 하시고 나도 마음에 들면 그냥 넘어갔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런 점은 자신보다는 남을 더 챙기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에는 현장이 즐겁지 않았다는 그였다. 하지만 점차 현장이 즐거워지면서 나보다는 남을 더 챙기게 됐다고 한다.
"놀고 싶은 나이 때는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었어요. 상대방에 대한 연기에 배려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어요. 내 것만 잘하면 그만이지라는 생각 뿐이었죠. 어려운 신을 하게 되면 그냥 빨리 끝났으면 했어요. 철이 없었죠."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 이후 송혜교는 변하기 시작했다. 연기가 즐겁고, 현장이 편하고 좋았다. 작품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 것이 즐겁고, 신에 대한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이 행복했다.
"노 작가님 만나고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다. 20대 중반에 만나고 후반까지 이어졌다"는 송혜교는 "그 때 봤던 분들의 조언과 긍정적인 생각이 30대 때 내게도 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연기만 생각하는 게 좋았다. 집보다도 촬영장이 내 공간 같았다고 한다. 자신의 촬영 분량이 끝나면 집에 가기 급급했던 송혜교는 어느틈엔가 남의 연기를 보기 위해 현장에 끝까지 남는 배우가 됐다. 어려운 신은 어떻게 풍족하게 만들까를 고민했고, 상대 배우가 빛나야 되는 신에서는 어떻게 도와줄까를 생각하게 됐다.
시작점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송혜교는 그렇게 남을 먼저 배려하는 배우가 돼있었다.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까 내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이제 연기를 즐기기 시작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영화를 보면 또 한 번 송혜교에게 놀란다. 철 없는 아이에서 엄마가 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아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미라의 모습을 완벽히 연기할 수 있었던 건 송혜교도 어른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
◇송혜교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다 제 잘못입니다"
영화 언론시사회가 얼마 남지 않았던 시점, 기사 하나가 터졌다. 스타 S 배우가 탈세를 했다는 내용이었다. S는 송혜교였다. 이후 영화 홍보사에 "송혜교 인터뷰 하나요?"라고 물었다. "예정대로 할 것 같습니다"라는 답이 왔다.
의외였다. 아무리 영화가 중요하지만 이런 시점에 기자들 앞에 나서는 것은 여간 쉬운일이 아니다. 송혜교는 직접 인터뷰 자리에서 먼저 자신의 잘못을 사과했다.
"제 불찰로 인해 죄송한 일이 벌어져서 영화에 피해를 준 것 같아 미안해요. 영화만이라도 좋은 반응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과거에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억울한 건 전혀 없어요. 다 제 책임이에요. 저는 쓴소리를 들어야해요. 처음에는 인터뷰에 나오는 게 맞나 싶었어요. 하지만 만나고 사과드리는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피해버리면 너무 무책임한 것이잖아요."
미안해보였다. 진심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한 번 송혜교를 만날 자리가 있었다. 지난 29일 <두근두근 내 인생> 무대 인사 자리였다. 영화에 대해 편안하게 농담조로 인사를 건넨 이재용 감독, 강동원, 조성목 때문에 분위기가 좋았다. 영화 자체의 완성도가 좋아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운 때였다.
마지막으로 송혜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영화를 앞두고 제가 실수를 해서 관객들이 안 오실까봐 걱정했는데,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하네요"라고 짧게 말했다.
꽤 진정이 됐을 법한 시간이었는데도 여전히 송혜교는 마음이 편치 않았던 듯 싶었다.
소속사 관계자에 들어보니 송혜교는 세금 관리를 하지 않았다. 이런 잘못이 있었는지 잘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송혜교는 오롯이 자기 책임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아름이가 선천성 조로증에 걸린 이유는 17세 시절 아이가 태어나지 않게 빌면서 동네를 수십 바퀴를 뛰었기 때문이라며 자책하며 오열하는 미라의 장면이었다. 아이가 아픈 것이 자기 때문이라며 슬피 우는 미라와 송혜교는 비슷한 지점이 있었다.
이번에 큰 상처를 겪은 송혜교. 또 한 번 성장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는 좀더 깊이 있는 연기를 보여주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를 용서하는 사람들도 더 많아지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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