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간첩증거 조작사건' 재판에서 서로 자신의 무죄만 주장한 탓에 '국정원이 유우성씨의 출입경 기록을 구하는 데 돈을 지출했으나, 이 돈을 받은 사람은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측이 처음부터 증거가 조작된 것을 알고 있었다는 정황도 드러났다.
1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부(재판장 김우수 부장) 심리로 열린 국정원 김모(48·일명 김사장) 과장과 중국 내 협조자 김모(60)씨의 재판에서 검찰은 국정원에 보낸 사실조회확인서를 공개했다.
이를 보면 김 과장은 지난해 9월26일자로 위조한 중국 화룡시 공안국 출입경관리과 명의의 유씨 출입경 기록을 구해주는 대가로 국정원에서 받은 1200만원을 김씨에게 지급했다.
그러나 김씨는 "이 사건과 관련해 김 과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적이 없고, 그 전부터 돈을 받은 바 없다"고 진술했다. 아무 대가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은 증거위조에 가담하지도 않았다는 취지다. "김씨가 요구한 경비를 먼저 주고 문건을 받았다"는 김 과장의 검찰진술과 배척된다.
이어 김씨는 중국 화룡시 공안국에서 근무했던 왕모씨를 통해서 김 과장이 부탁한 문건을 구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왕씨는 김 과장을 아주 높이 보는 입장이다. 김 과장이 부탁하면 왕은 심지어 돈을 안 받고 (일을) 하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김씨는 김 과장이 이 문서를 받기 위해 지난해 10월14일 중국으로 넘어왔고, 이튿날 중국 단동에서 김씨는 김 과장과 왕씨 등 셋이 만났다고 설명했다. 이 자리에서 왕씨는 "좋은 소식을 기다리라"고 하며 떠났고, 다음날 문건을 김 과장에게 건넸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둘의 진술은 또 엇갈렸다. 김 과장은 왕씨를 만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씨에게 유씨의 출입경 기록을 구해오라고만 했지, 위조해오라고는 안했다는 게 김 과장의 설명이다. 김씨는 이날 법정에서 "김 과장이 지난해 10월15일 단둥에서 왕씨를 만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과장이 유씨의 출입경 기록이 위조된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정황은 김씨가 허위로 진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간첩 혐의를 받던 유씨의 항소심 재판에서 변호인단이 검찰이 제출한 출입경 기록이 위조된 것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하자, 김 과장은 중국에 있던 김씨를 국내로 불렀다.
김씨는 "당시 김 과장이 '문제가 생겼다. 난리났다'며 내게 한국으로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김 과장의 지시로 진술서를 작성한 날은 지난해 12월21일이다.
변호인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증인이 구한 문건이 위조된 것을 의미하는 것인가"라고 물었으나, 김씨는 정확히 답변하지 못했다.
이때 검찰은 "김 과장과 김씨는 애초에 이 문서가 위조된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을 '위조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김 과장은 유씨의 출입경 기록에 대한 위조 의혹을 해결하려고 김씨를 한국으로 부른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김 과장의 호출을 받고 한국에 온 김씨는 김 과장이 불러주는 대로 '유씨의 출입경 기록은 왕씨를 통해서 정상적으로 발급받은 문건'이라는 취지의 진술서에 썼다. 검찰은 이 진술서를 유씨의 항소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서울중앙지법(사진=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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