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시인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한탄한다.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의 부실함에 분노하는 자신을 보면서 비겁한 지식인의 전형을 그려낸다.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성찰한다. 급기야 시인은 “모래야 나는 얼만큼 작으냐”고 되묻는다. 시인은 작은 것에 대한 가장 치열한 질문을 통해 빛나는 보편성으로 나아간다. <폭포>를 마주한 시인은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고 일갈한다.
정치는 메시지다. 정치인은 누구나 시장에 나가 주름진 서민의 삶을 마주한다. 거리에 나가 시민의 손을 붙잡고 그들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듣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보다 나은 국민의 삶을 위해 미래를 설계한다. 진짜 정치인이라면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비겁을 넘어 용감하게 미래의 꿈을 펼쳐놓는다. 상대방을 헐뜯는 것을 넘어 미래에 메시지를 전한다. 그래서 진짜 정치는 한 편의 시와 같다. 체코의 하벨 대통령은 정치를 ‘불가능을 꿈꾸는 예술’이라 했다.
2016년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시와 산문’ 논쟁이 벌어진다. 힐러리 클린턴이 예상 밖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버니 샌더스를 공격하기 위해 이번 경선을 ‘시와 산문의 대결’이라고 묘사한 것이다. 정말 탁월한 표현이다. 힐러리는 이 말을 통해 샌더스를 이상주의자로 규정하려 했다. 그녀는 “선거운동은 시로 하고, 국정운영은 산문으로 한다”는 한 정치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조금 지루할지라도 국정운영을 잘할 수 있는 자신이 미국의 다음 4년을 책임질 적임자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상주의자 샌더스보다 현실주의자 힐러리를 더 좋아할까. 가슴이 뜨거운 샌더스보다 머리가 차가운 힐러리를 더 좋아할까. 경선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힐러리의 이런 비유에도 불구하고 샌더스 열풍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이상과 현실을 둘러싼 ‘장외 설전’도 이어진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변혁적 레토릭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오바마가 얻은 성과는 모든 단계마다 빵 한쪽이라도 얻는 것이 얻지 못하는 것보다 낫다는 걸 수긍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힐러리를 옹호했다. 반면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부 장관은 “빵 반쪽이 의미가 있으려면 우선 빵 덩어리 자체가 충분히 커야 한다. 그래서 변화를 위한 운동은 목표를 높게 잡아야 한다”며 샌더스의 과감한 변화를 지지했다.
미국 민주당 경선은 자본주의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심화된 소득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를 둘러싼 정책 논쟁으로 뜨겁다. 샌더스는 정치혁명을 통해 월가가 지배하고 있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힐러리는 점진적 개혁을 강조한다. 특히 샌더스의 정책은 선명하다. 대형은행 해체, 부의 재분배를 통한 중산층 복원, 무상 국립대학 신설 등을 주장한다. 샌더스는 지난 해 3개월 동안 무려 250만 명으로부터 3300만 달러의 후원금을 걷었고, 40만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샌더스의 미국’을 위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총선을 앞둔 한국은 어떤가.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위한 선명한 메시지를 마주하고 있는가. 극단적인 소득불평등 시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득권 세력의 이익을 위해 꿋꿋하게 애쓰고 있는 새누리당은 논외로 하더라도, 두 개로 갈라진 야당은 국민의 마음을 뒤흔들 정책 어젠다를 내놓고 있는가.
거대 양당의 기득권 구조를 타파하자고 출범한 국민의당은 오래된 배우들이 모여 별로 새로울 것 없는 연극을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국민의 삶 속으로 달려가 현실의 문제를 듣고 미래의 변화를 위해 과감한 정책을 제시하기보다 과거의 무덤 속으로 들어가 쓸데 없는 설화로 초기 지지율마저 까먹고 있는 모양새다.
이른바 중도화론은 이념 프레임의 가장 불행한 적자다. 영국의 가디언은 샌더스의 정책조차 유럽에서는 중도우파의 것과 닮았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소득불평등 해소는 진보, 보수의 프레임을 가뿐히 넘어서는 시대정신인 셈이다. 진보, 보수, 중도를 떠나 선명함조차 갖지 못한 도전자에게 눈길을 줄만큼 국민들은 한가하지 않다.
더불어민주당은 인재영입 퍼포먼스와 문재인 대표의 사퇴로 국민의당과의 경쟁에서 형식적 우위 요소를 선점했다. 하지만 더민주에도 국민의 마음을 설레게 할 정확한 목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진짜 경쟁은 이제부터이고 누가 먼저 국민을 위한 미래의 시를 쓸 것인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김수영)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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