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기업의 새로운 자본조달처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크라우드펀딩(Crowdfunding)이 지난달 25일 국내에서 출범했다. 크라우드펀딩은 비상장 기업이 대중으로부터 온라인으로 자금을 모집할 수 있는 방식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시행된 지 일주일 만에 몇몇 기업은 청약금액이 목표액을 넘어서는 성과를 거두었다. ‘대박’의 희망을 품은 개인 투자자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가진 신생기업에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무렵 형성된 미국의 크라우드펀딩 시장은 매년 빠르게 성장하며 활성화된 상태다. 크라우드펀딩 시장을 개척한 대표적 기업 킥스타터(Kickstarter)에 따르면 지금까지 펀딩에 성공한 이 회사의 캠페인이 10만 건 이상, 모금액은 총 19억달러이다. 자본 시장에서 크라우드펀딩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 미미하지만, 최근 기업의 자본조달 방식은 기존의 상장 및 유상증자와 채권발행 외에 다양한 모습으로 확대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최근 스페셜 리포트를 통해 글로벌 자본조달 시장의 변화를 소개했다.
지난해 6월 서울에서 열린 ‘벤처기업 데모데이’에서 알버트 김 더블미 대표가 투자유치를 위해 회사를 홍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지금이 자금을 조달하기에는 최적기입니다." 미국 전기통신 소프트웨어 회사 슬랙(Slack)의 설립자 스튜어트 버터필드가 지난해 4월 기업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외쳤다. 그는 실리콘밸리 기업인답게 "어떤 종류의 기업이든 지금이 고대 이집트 시대 이후 전 인류 역사를 통틀어 자금을 모으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라면서 다소 과장된 표현을 동원했다.
이미 정상에 올라선 기업에겐 특별한 관심을 끌만한 주장이 아니지만, 창업의 과정을 겪고 있는 기업에게는 솔깃한 정보다. 버터필드의 호언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봄 슬랙은 1억6000만달러에 달하는 벤처자금을 조달하는 데 성공하면서 전례 없이 성공적인 기업가치 평가 사례로 주목을 받았다.
최근 들어 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유니콘'을 둘러싼 자본시장 환경이 급속히 나빠졌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 멀리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글로벌 비즈니스를 꿈꾸는 기업가에게는 예전보다 훨씬 다양한 자본 조달처가 생겼기 때문이다. 가끔씩 거품이 터지긴 하지만 자본 시장은 구조적이고 진보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자본 시장을 발전시키는 요소로 FT는 투자 환경의 변화와 투자욕구의 상승, 기술혁신을 꼽았다. 지속되는 경제부진과 저금리 탓에 고수익을 원하는 투자자들에게는 빠르게 성장하는 기업이 필요하다. 크라우드펀드부터 상장펀드까지 다양한 펀드가 투자자와 기업가를 한 곳에 모으고 있는 배경이다. 또 각국 정부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투자허브 구축에 애쓰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자산유동화를 이끌고 성장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새로운 자금 모집 통로로 자금시장연합을 추진하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이루어낸 주역은 기술 혁신이다.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투자 플랫폼을 등장시켰고 전통적인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투자계의 큰 손, '엔젤 투자자'의 부상
규제 기관이나 정부의 도움 없이도 투자자와 기업가는 서로 짝을 찾아내고 있다. 2010년 설립된 미국의 자금모집 웹사이트 '엔젤리스트(AngelList)'는 개인 투자자와 자금이 필요한 스타트업을 연결해준다. 최근 발행한 2015년 연간 보고서는 엔젤 펀딩이 이룬 성과를 자랑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엔젤리스트는 지난해 투자자 3379명에게서 총 1억6300만달러를 모집해 스타트업 441개를 지원했다. 한해 전 2673명의 투자자로부터 1억400만달러를 모집해 243개의 기업을 지원 것과 비교해 50%가량 성장했다.
이를 모방해 영국에서 2년 전 엔젤투자플랫폼 '딜쉐어(DealShare)'가 세워졌다. 딜쉐어를 설립한 영국비지니스엔젤협회(UK Business Angels Association)는 1만5000명이 넘는 개인 투자자 회원과 회원이 추천하는 벤처 펀드로 구성된다. 딜쉐어는 엔젤투자자 네트워크를 만들어 공동투자를 활성화했다. 스타트업에 금융교육을 제공하고 투자자의 정보 교환을 도우며 15억파운드에 이르는 영국 엔젤투자 시장을 이끌고 있다. 현재 30개의 기업이 딜쉐어를 통해 자금을 모집하고 있다. 산업 분야는 헬스케어, 환경, 디지털 미디어, 패션, 가상현실 산업 등 다양하다.
'핀테크'는 가장 강력한 페이스 메이커
핀테크(Fintech)도 금융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등극할 전망이다. 세계경제포럼(WEF)도 지난해 6월 핀테크 혁신으로 금융서비스가 개편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핀테크는 데이터를 이용한 자산 관리법 등 저비용 경영관리를 가능케 해 소규모 자본에 의존한 기업이 수혜를 받을 수 있다. WEF에 따르면 지난 2014년 핀테크기업에 대한 펀딩은 한해 전보다 4배 늘어난 120억달러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300억달러가 될 전망이다. P2P대출중개, 전자상거래금융, 송장금융, 온라인 공급체인 금융과 온라인무역금융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미국 벤처캐피탈 파운데이션캐피탈은 전 세계 P2P대출시장의 규모가 계속 급증해 2025년에는 1조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기술혁신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캔사스시티에 있는 운용자본 서비스 회사 C2FO는 지난해 글로벌컨설팅사 KPMG가 뽑은 '가장 흥미로운 100대 핀테크 스타트업' 명단에 올랐다. C2FO는 중소기업의 생사를 가를 수 있는, 송장 지불에 걸리는 시간 문제를 핀테크를 통해 해결했다. C2FO는 기업이 제3자로부터 즉시 대금을 지급받고 나중에 대금 회수를 할 수 있는 창구가 됐다. 또 다른 수상자는 뉴질랜드에 위치한 회계 소프트웨어 회사 지로(Xero)다. 이 회사는 국립호주은행과 기술 결연을 맺고 기업을 위한 대출 승인과정을 간편하고 쉽게 만들어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도 온라인펀딩 등 핀테크는 일반적인 자본조달 통로가 아니다. 주식이나 채권 발행을 통한 증자나 은행대출 등 기존의 자본조달 방법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수준이다. 앤드류 코베트 봅슨대 교수는 "크라우드펀딩이 창업의 기회를 제공하고 자금부족에 시달려 문 닫으려는 기업을 회생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음을 놓치지 말라"고 조언했다.
'사모펀드'와 '그림자 자본' 규모에 주목해야
기술 혁신이 가져온 새로운 자본조달 창구에만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사모투자펀드(PEF)의 2015년 자금 조달 실적은 약 2870억달러다. 높은 수수료와 낮은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고수익을 내는 사모펀드에 돈이 몰리고 있는 것이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으로 운용자금이 20억달러를 넘는 사모펀드의 순자산액 합계는 약 1조2000억달러에 이른다.
전통적인 사모펀드에는 '페이션트 펀드(patient fund)'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사모펀드 투자활동이 장기간에 걸쳐 이뤄지는 만큼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자금'이라는 의미다. 투자대상 검토와 투자자산 성장 자체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모펀드는 확정된 투자수익을 분배할 때까지 보통 5~7년이 걸린다. 투자자는 사모펀드에 자금을 위탁한 후 일반적으로 10년간 환수할 수 없는데, 장기투자의 기회비용을 감당해야 하고 투자금의 1~2%에 해당하는 관리보수비와 투자수익의 20%에 달하는 수수료를 인센티브로 지불해야 한다.
요즘은 이러한 10년짜리 펀드가 전체 사모펀드의 3분의 1로 줄었다. 대신 사모투자 중에서 '그림자 자본(Shadow Capital)'에 속하는 공동투자와 직접투자의 비중이 늘었다. 공동투자는 투자자가 펀드매니저들과 공동으로 투자자산에 투자하는 형태이고, 직접투자는 펀드매니저를 배제하고 투자하는 형태다. 간접투자에서 발생하는 높은 수수료를 피할 수 있어 수익률을 높이려는 기관투자자들이 직접투자와 공동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투자인력을 고용해 외부 펀드매니저에게 지급했던 위탁수수료를 절감하려는 기관도 늘고 있다. '그림자 자본'은 2008년에 사모펀드 조성액의 10%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26%로 급증했다. 투자대상 찾기에 몰두하고 있는 사모펀드의 '그림자 자본'을 통해 기업은 또다른 자본조달 기회를 얻고 있다.
'챌린저은행'이 대형은행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자본 시장의 혁신은 은행권의 변화도 불러오고 있다. 영국에서 콧대 높은 기존 대형은행에 맞서 고객과 눈높이를 맞추는 '챌린저은행(Challenger Bank)'이 등장했다. 챌린저은행은 소매금융 및 중소기업 시장을 중심으로 대형은행과 차별적인 전략을 펼치는 소규모 신생은행을 일컫는다. 2011년 이후 꾸준히 성장한 챌린저은행은 자본 시장에서 서서히 입지를 다지고 있다.
크라우드펀딩과 같은 시기에 출범한 두 챌린저은행, 알더모어(Aldermore)와 쇼브룩(Shawbrook)은 각각 크라우드펀드 전체가 조달한 자금보다 더 많은 대출을 이뤄냈다. 두 은행의 대출금을 합산하면 100억파운드가 넘는다. 영국 P2P대출과 크라우드펀딩이 유통한 금액은 총 55억파운드다. 주7일로 영업시간을 확대하거나 슈퍼마켓 유통망과 은행점포를 결합시키는 전략으로 대형은행에 도전하는 챌린저은행은 10년 이내에 대형은행의 실질적인 경쟁상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신지선 토마토CSR연구소 연구위원 jise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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