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남궁민관·조승희 기자] 산유국들의 원유 감산 노력이 '동결'로 그치며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가 안도하는 분위기다. 유가의 급등락만 없다면 공급과잉에 따른 저유가가 지속되는 상황이 오히려 호재라는 분석이다.
주요 산유국들은 글로벌 원유 공급과잉 상황 해소를 목표로 연초부터 활발한 감산 합의를 진행해왔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사우디와 러시아, 카타르, 베네수엘라 등 4개국은 원유 생산량을 지난달 11일 기준으로 동결키로 합의했으며, 17일 감산에 강력히 반발해 온 이란이 태도를 바꿔 동결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혔다. 이에 이날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서부텍사스유(WTI)는 배럴당 30.66달러에 마감하며 전날 대비 1.62달러 급등했다.
하지만 이번 산유국들의 움직임만으로는 글로벌 원유 공급과잉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4개국의 동결 기준점인 1월 석유 생산량은 이미 초과공급 수준인 점을 비롯해 합의에 참여한 국가들이 합의 내용을 약속대로 이행할지 여부도 불확실하다. 특히 이란을 비롯해 이라크, 미국 등 다른 주요 산유국들이 동결 또는 감산에 나서지 않는 이상 글로벌 석유 공급과잉은 해소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란은 경제 제재 해제를 위해 핵 개발까지 포기한 상황으로 연초부터 적극적으로 석유 생산 확대에 나섰다. 이번 태도 변화 역시 다른 산유국들의 동결을 지지하는 수준에서 그쳤으며, 오히려 "다른 주요 산유국들이 지난 3년간 서방의 제재를 받았던 상황을 잘 인지하고 있다"며 기존 원유 생산량 확대 입장을 고수할 뜻을 비쳤다. 이라크 역시 IS와의 전쟁으로 자금이 절실한 상태로, 동결 또는 감산 행렬에 합류할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국내 정유·석유화학 업계는 원유 감산이 수포로 돌아가자 내심 반색하는 분위기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원가 경쟁력 측면에서 비산유국인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에게는 저유가가 훨씬 유리한 것이 사실"이라며 "공급과잉이 우려되기는 하나 오히려 산유국 업체들이 증설을 지연·취소하는 등 공급이 완화되며 수급 개선의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정유업계 관계자 역시 "유가는 산유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 입장에서는 낮으면 좋다"며 "걱정은 유가보다는 글로벌 디플레이션과 중국의 성장 둔화로, 이는 저유가 기조 때문은 아니다"고 말했다. 다만 "유가가 10달러 선으로 하락해 제품가격도 동반 하락하면 공장을 운영할 돈도 되지 않는다"며 극단적인 유가 하락은 경계했다.
공급과잉 지속으로 정제마진이 높게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관계자는 "산유국들이 공급과잉 상황에서 서로 자기 물건을 팔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정유사 입장에서 좋은 것"이라며 "제품의 판가하락 대비 원가 구매비용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많아져 정제마진이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바레인 사키르에 위치한 석유 시추 설비.사진/AP뉴시스
남궁민관·조승희 기자 kunggi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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