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범이 이른바 '대포통장'에서 현금을 찾기 위해 계좌 명의인의 정보를 입력하는 행위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상 사기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대포통장에서 인출하는 행위에 대해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해석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9일 사기 등 혐의로 기소된 보이스피싱 인출책 중국인 K(51)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통신사기피해환급법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전기통신금융사기로 인해 피해자의 자금이 대포통장 계좌로 송금·이체된 후 그 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기 위해 정보처리장치에 계좌 명의인의 정보 등을 입력하는 행위가 통신사기피해환급법 15조의 2 1항의 구성요건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처벌조항에서 말하는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정보 등의 입력'이란 '타인에 대한 전기통신금융사기 행위에 의해 자금을 사기이용계좌로 송금·이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정보 등의 입력'만을 의미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피해자의 자금이 사기이용계좌로 송금·이체되면 전기통신금융사기 행위는 종료되는 것이므로 그 후 사기이용계좌에서 현금을 인출하거나 다시 송금하는 행위는 범인들 내부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일 뿐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김창석·조희대·권순일·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대포통장 계좌인 제3자 명의 사기이용계좌에서 자금을 인출하는 행위는 '전기통신금융사기'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로 봐야 하고, 대포통장 명의인도 이 사건 처벌조항에서 말하는 '타인'에 해당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K씨는 지난해 4월 5명의 피해자 명의 체크카드로 90만원 등 총 1130만원을 인출해 또다른 보이스피싱 조직원에게 송금하는 등 전자금융거래법위반·사기·통신사기피해환급법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전자금융거래법위반과 사기 등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K씨에 대해 징역 1년 6월을 선고했지만, 통신사기피해환급법위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 역시 대포통장 계좌에서 인출하는 행위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제15조의 2 제1항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통신사기피해환급법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판결을 유지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진/대법원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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