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기자] 박세리(하나금융그룹)란 이름 석 자가 한국 여자골프계, 아니 한국 스포츠 전체에 남긴 공적은 어마어마하다. 그의 성장은 곧 국내 스포츠 국제 위상의 한 단계 도약을 의미한다. 어느새 '전설'이 된 이 선수가 올해를 끝으로 현역 생활을 마감한다. 전설은 떠나지만, 그 전설을 보며 꿈을 키운 '박세리 키즈'들은 어느덧 한국 여자 골프 주축이 돼 그 공백을 메운다. 여전히 박세리의 자취는 한국 골프계에 고스란히 남았다.
박세리는 지난 18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JTBC 파운더스컵에 9개월 만에 출전한 뒤 미국 '골프채널'과 인터뷰에서 "투어 풀타임을 소화하는 건 올 시즌이 마지막이 될 것"이라며 현역 은퇴 의사를 내비쳤다. 이어 "이제 시간이 됐다. 투어 활동으로 많은 것을 배웠다. 한국으로 돌아가 국제무대를 꿈꾸는 선수들을 도울 것"이라며 후배 육성에 대한 의지를 밝혔다. 미국으로 향하는 한국인 후배 골퍼 탄생의 시발점이 된 '왕언니'다운 생각이다.
언젠간 꼭 한 번은 경험해야 했던 전설의 퇴장이다. 유에서 무를 창조한 박세리는 1998년 세계 골프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침체된 국내를 떠나 혈혈단신 LPGA 무대에 도전장을 던질 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 했다. 일찌감치 국내를 접수한 박세리는 LPGA 프로테스트 본선 1위를 차지하며 당당히 미국에 입성했지만, 세계적으론 어디까지나 무명 동양인 선수에 불과했다. 당시 LPGA에 한국 선수는 박세리뿐이었다. 낯선 경기장 조건과 언어, 생활 환경 등 모든 것을 스스로 개척해야 했던 때다. 박세리는 묵묵히 그 길을 걸었다.
힘겨웠을 시기, 피나는 노력 끝에 그는 그렇게 스스로 전설이 됐다. 그 해 5월 박세리는 시즌 10번째 출전 만에 메이저 대회였던 맥도날드 LPGA 챔피언십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주위를 놀라게 했다. 이후 US여자오픈에서 잘 알려진 '맨발 투혼'을 발휘하며 한 해 메이저 2연승을 거뒀다. 이후 숨 가쁘게 10년을 넘게 달려 LPGA 23승을 더 추가한 박세리는 2007년 한국인 최초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박세리의 초반 미국 활약은 당시 현지 언론에서도 앞다퉈 다룰 만큼 큰 사건이었다. 낯선 동양인 숙녀의 엄청난 실력과 뛰어난 정신력은 새로운 LPGA 패러다임이 됐다. 국내의 시선도 다르지 않았다. 세계 무대에서 당당히 실력을 뽐내는 박세리를 보며 국내 소녀들은 '제2의 박세리'가 되기 위해 골프채를 잡았고 LPGA란 꿈을 키웠다. 일명 '박세리 키즈'들은 이렇게 탄생했다.
약 10년의 세월이 흘러 '박세리 키즈'들인 박인비(KB금융그룹), 신지애(스리본드), 최나연(SK텔레콤), 유소연(하나금융그룹) 등은 LPGA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해 막강한 실력을 자랑하며 한국의 이름을 드높였다. 이후에도 박세리의 영향을 받은 많은 한국 선수들이 미국 무대를 접수했다. 박세리의 영향력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 한국 낭자들은 역대 한 시즌 최다승인 15승을 합작하며 여자 골프 최강국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박세리가 외로이 LPGA 무대에서 뿌린 씨앗은 박세리 키즈의 탄생으로 이어졌고 한국이 세계 여자 골프계에서 주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 박세리는 떠나도 박세리 키즈는 남았다. 지난 2010년 이후 LPGA 우승이 없는 박세리의 떠나는 뒷모습이 전혀 쓸쓸하지 않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박세리가 지난해 10월 24일 인천에서 열린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걸어가고 있다. 사진/KEB하나은행 챔피언십 조직위원회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