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기자] 세계 최고 선수들이 경쟁하는 게 올림픽 무대이지만 적어도 골프를 놓고는 이 말을 쓸 수 없을 듯하다. 최근 상위 스타들이 앞다퉈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불참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자 골프 세계랭킹 1위 제이슨 데이(호주)는 28일(한국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모기로 인해 감염될 수 있는 지카 바이러스가 우려스럽다. 나는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인데 위험을 감수할 뜻이 없다"면서 "올림픽에서 국가를 대표해 뛰는 게 큰 목표였지만 골프가 가족의 안전보다 위에 있을 수 없다"며 리우 올림픽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지난주 세계랭킹 4위 로리 맥길로이(북아이랜드)가 데이와 같은 이유로 올림픽에 나서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외 세계랭킹 8위 아담 스콧(호주)을 비롯해 브랜든 그레이스, 루이스 우스투이젠(이상 남아공), 비제이 싱(피지), 마크 레시먼(호주), 셰인 로리(아일랜드) 등도 자국을 대표할 기회를 스스로 내려놨다. 현재 세계랭킹 1위 조던 스피스를 비롯해 7위 리키 파울러(이상 미국) 등 상위 랭커들도 올림픽 출전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어 불참 선수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남자 선수들만이 아니다. 아직 정식으로 불참을 발표하진 않았지만,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를 누비는 세계랭킹 3위 박인비(KB금융그룹)와 9위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도 각각 왼손 손가락 부상과 결혼 때문에 올림픽에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올림픽 골프는 세계랭킹으로 출전 선수를 선별한다.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황이기에 실력이 뛰어난 세계적인 선수들을 끌어모으겠다는 계산이다. 프로 대회에서 나오는 명승부를 올림픽에서도 재현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방향이 어긋났다. 치열한 프로 생활을 펼치며 '부와 명예'를 동시에 잡은 톱 랭커들에게 100년을 훌쩍 넘긴 후 돌아와 '명예'만을 강조하는 올림픽 출전을 기대하는 건 애초부터 무리였다. 그렇다고 선수들을 유혹할 '당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게는 내년 메이저대회 출전권이 주어지나 이미 이를 가진 톱 랭커들에겐 무용지물이다.
선수 대부분 앞다퉈 불참 이유로 신생아 소두증을 일으키는 지카 바이러스를 언급하고 있지만, 결국 이는 표면적인 이유에 불과하다. '올림픽 금메달'이 이들이 생각할 때 그리 높은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4월 미국 매체 ESPN은 56명의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선수들에게 올림픽 금메달과 메이저 대회 중 어느 대회에 우승하고 싶냐고 물었는데 95%가 메이저 대회를 선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1904년 세인트루이스 대회 이후 무려 112년 만에 올림픽 무대로 돌아온 골프의 복귀 의미가 퇴색됐다. 다시 돌아온 첫 무대에서 제대로 존재를 알리려 했지만, 지금으로썬 대회 흥행 자체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골프는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지만, 지금의 사태가 계속된다면 차기 올림픽까지 살아남을지도 미지수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제이슨 데이(오른쪽)과 로리 맥길로이가 리우 올림픽에서 나서지 않는다. 사진은 지난 3월 28일 델 매치 플레이 장면. 사진/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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