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원나래기자] 변호사의 부동산 중개업 침입 사건이 논란 끝에 무죄로 결론나면서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자리가 더욱 위태로워졌다. 법원의 판례에 따라 앞으로 변호사들도 공인중개 업무가 가능해져 공인중개사와 변호사 간 치열한 '밥그릇 싸움'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는 지난 7일 공인중개사 자격없이 사실상 중개영업을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공승배(변호사) 트러스트부동산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치러진 이번 재판에서 배심원 7명 중 4명이 공 대표에서 죄가 없다고 판단했으며,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법을 비켜간 변종 중개업소의 등장 등으로 이슈가 됐지만, 심판으로 나선 국민들은 변호사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일각에서는 공인중개사에 대한 대중의 불신과 불만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공 대표는 지난 1월 부동산 중개사이트인 '트러스트 부동산' 오픈했다. 현재 홈페이지에는 650여개의 물건이 등록돼 있으며, 공 대표의 법률자문을 통해 거래가 성사된다. 법률자문이라는 포장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중개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공인중개사 자격 미취득자는 중개업 등록을 할 수 없으며, 무등록 중개업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개업 공인중개사가 아닌 자는 공인중개사 사무소, 부동산 중개와 유사한 명칭을 사용할 수 없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국민참여재판이라는 꼼수를 활용해 공인중개사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든 판결로, 사업부가 대한변협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것에 불과하다"며 "전국의 36만 공인중개사와 100만 중개가족 모두 총 역량을 동원해 총궐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질적으로 편법 중개업으로 해석됨에도 불구하고 배심원단은 무죄를 선고했다. 중개보수에 비해 턱없이 낮다고 느껴지는 체감 서비스 수준 등 중개업계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협회조차 국민참여재판을 '꼼수'로 해석했다는 것은 개업공인중개사를 향한 소비자들의 불만을 인지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풀이된다.
서울에 사는 박모(39·남)씨는 "집 한번 보여주고 계약서에 도장 정도 찍는데 너무 많은 수수료를 받는다고 생각한다"며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 서비스도 좋지 않고 어떤 곳은 잡상인 보듯 불쾌감까지 준다. 거래가 끝난 후에는 '나몰라라' 하는 것도 문제"라고 불신을 나타냈다.
공인중개사협회는 개업공인중개사의 자질향상 및 품위유지와 중개업에 관한 제도의 개선 및 운용에 관한 업무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국토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 협회를 설립된다. 하지만 협회는 자질향상과 품위유지를 위한 노력보다는 기득권 유지에 몰두하는 모습이다.
최근 대기업도 중개업에 참여할 수 있는 종합부동산회사 저지에 역량을 집중했으며, 경쟁자인 신규 공인중개사 유입을 막기 위한 정책제안을 국토부에 꾸준히 넣고 있다.
지난 달 협회가 국회 입법활동 자료로 작성한 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부동산 중개보수 현실화 ▲공인중개사 자격사의 수급조절 ▲업무영역 확대(매매업 허용 등) ▲부동산컨설팅업 개업공인중개사의 고유업무화 등이 골자다. 업계의 이권을 대변한다는 업무적 특성을 감안해도 서비스질 향상을 위한 내용은 담고 있지 않다. 소비자들의 불신·불만에 대한 자성 역시 없다.
공 변호사는 최후변론에서 배심원들에게는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세상 사람들이 변호사의 믿음직한 서비스를 합리적인 가격에 받을 수 있는 새 지평이 열리느냐, 아니면 이 절호의 기회가 사라져 버리느냐 결정된다"며 "소비자에게 어떤 것이 더 혜택이 되는 길인지 잘 부탁드린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허명 부천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평생 몇 번 계약을 하지 않는 매수자나 매도자는 모르겠지만 개업중개사들은 하나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많은 돈과 노력, 시간을 들인다"면서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복덕방에 대해 그리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객들이 느낄 수 있는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을 협회가 주도해 찾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국민 자격증으로 불리며 서민과 청년층에게 창업의 기회를 줬던 중개업이 특정 전문 집단으로 쏠리며 소규모 업체들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도봉구에 한 A공인 관계자는 "자격증과 작은 사무실만 있으면 누구라도 운영자가 될 수 있어 적은 돈으로 창업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며 "분양 시장이 좋은 수도권에서도 올해 거래가 손에 꼽을 정도로 거래건수가 몇 건 되지 않는 중개소도 많은데 일감을 또 잃게 생겼다"고 하소연 했다.
한편 지난달 29일 치러진 제27회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에는 총 19만1508명이 접수하며 2010년 12만7459명 이후 가장 많은 응시생이 몰렸다. 1985년 제1회 시험 이후 총 34만3474명의 합격자가 배출됐으며, 이 가운데 약 9만명이 협회에 소속돼 중개업을 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중인 취업준비생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원나래 기자 wiing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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