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충격·탄식…재앙 덮친 삼성의 하루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졌다"…경영공백 현실화에 삼성 초토화
2017-01-16 17:16:00 2017-01-16 17:24:57
[뉴스토마토 김혜실기자] 16일 오전 7시30분. 삼성 서초사옥은 여느 때처럼 평온했다. 이면에는 태풍 전야의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주말에 이어 이날도 8시에 41층 집무실에 자리했고, 다른 임원들도 출근을 마쳤다. 미래전략실 임직원들은 비상대기 상태를 이어갔다. 전날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강하게 시사한 만큼, 마음의 준비는 돼 있는 표정이었다. 미래전략실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특별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서도 불구속 수사에 대한 한줄기 희망은 놓지 않았다.
 
삼성으로서는 모든 것이 기로였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상황에서 이 부회장마저 자리를 비울 경우 험난한 가시밭길을 헤쳐나가는 것은 두려움 자체다. 이미 인사와 조직개편 등 경영일정이 시계제로이며, 갤럭시노트7 사태로 추락한 시장 신뢰도 되찾아야 한다. 삼성전자 인적분할 등 지주사 체제의 밑그림도 전면 보류될 수 있다. 하만 인수도 위태위태하다. 중차대한 시기 초래될 경영공백은 삼성이 그간 줄곧 강조해오던 '위기'와는 본질적으로 달랐다. 한 관계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지는 것 같다"며 "최소한 향후 2~3년은 아무 것도 못하고 올 스톱해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오전 11시. 삼성은 영장 청구 여부가 특검팀 브리핑 시간을 전후해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그에 따른 만반의 준비에 착수했다.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에 대해서는 영장을 청구할 것으로 분위기가 많이 기울어진 것 같다"며 "입장은 정리해놨다"고 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든, 입장 발표 준비는 끝낸 상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황별 대응책과 입장을 다시 한 번 정리했다. 11시31분경 특검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구속 기소했다는 속보가 전해지면서서 삼성 내부에서는 탄식이 흘렀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사실상 확정하는 의미였다. 점심식사를 하러 자리를 뜨는 이들도 없었다. 드문드문 담배를 피러 잠시 일어설 뿐이었다. 
 
오후 1시25분. 우려는 현실이 됐다. 그 어떤 표현으로도 내부 분위기는 표현하기 힘들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횡령, 위증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속보들이 쏟아졌다. 침통할 뿐이었다. 창립 이래 처음 있는 재앙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6년과 2009년 비자금 사건 당시 불구속 기소 끝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 대통령이 연루되면서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믿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은 벼랑 끝을 의미했다.
 
오후 2시. 특검의 브리핑에 삼성의 모든 눈은 TV로 쏠렸다. 재계도 덩달아 술렁였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일부 경제단체들은 "이 부회장의 범죄 혐의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은 상황에서 구속수사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며 불구속 수사를 촉구했다. 최순실 사태에 연루된 다른 재벌기업들도 순식간에 표정이 얼어붙었다. "삼성을 쳤다"며 "우리는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질문들을 되레 쏟아냈다. 삼성 측 입장 표명은 계속해서 지연됐다. 변호인단의 입장을 정무적 차원에서 다시 한 번 점검하는 등 입장 표명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오후 3시. 구속영장 청구 1시간30분 만에 삼성이 공식입장을 내놨다. 삼성은 "특검 결정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특검팀의 결정은 존중하지만 유감이라는 선에서 입장이 정리된 것으로 전해졌으나, 예상보다 수위가 높았다. 한 관계자는 "특검이 최순실 국정농단 본질을 놓친 채 삼성 특검으로 흐르고 있다"며 "도주와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전혀 없음에도 그룹 총수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부회장을 비롯한 수뇌부와 미래전략실은 즉각 대책 회의에 돌입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희망의 끈은 놓지 않았다. 영장실질심사 등 사법부의 판단을 기다려보겠다는 분위기다. 삼성 관계자는 "특검팀의 표적수사와 언론 플레이로 삼성이 희생양이 됐다"며 "적극적으로 대응해 이 부회장 구속만은 막을 것"이라고 했다. 결의였다.
 
1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 직후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직원들이 모여 긴 한숨과 함께 담배를 태우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김혜실 기자 kimhs211@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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